◎40년 망명끝 작년귀국… “사회주의·독립” 신념 여전 「본토와의 통일이냐 독립이냐」로 시각이 양분된 대만에서 사회주의자이면서 독립론자인 쉬밍(77)은 독특한 아웃사이더이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은 본토와의 통일을 주장하는데 그는 다르기 때문이다.
40여년간의 일본 망명생활끝에 지난해 어선을 타고 대만으로 밀입국한 그는 지금도 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고 있다. 『대만인의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중산층을 조직화해 독립된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돌아보면 이같은 주장이 당연하다는 느낌이다.
「대만당국의 공적1호」로 지목됐던 쉬밍이 고난에 찬 혁명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30년대 후반 일본와세다대 유학시절부터. 일제의 만주침략에 격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중국에서 항일투쟁과 공산 게릴라활동을 벌인 그는 49년 공산정권이 대륙을 석권했을 때 공산당과 결별하고 대만으로 돌아갔다. 지주들을 학살하는 공산당원들을 「파시스트」라고 공격했던 것.
하지만 장개석정권은 그의 눈에 또다른 파시스트정권에 불과했다. 52년 장개석 암살을 도모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일본망명선을 타야만 했다.
도쿄 신주쿠에서 바늘가게로 생계를 연명하면서도 그의 신념은 꺾이지 않았다. 그의 각종 저서와 강연 테이프는 한때 대만내 반체제운동의 교과서가 됐을 정도로 그의 존재는 신화적이었다.
그러나 쉬밍의 존재는 예전같지 않다. 일본망명(52∼93년)당시 3천∼4천명에 달하던 자신의 지지자들은 이제는 수백명으로 줄었다. 사상적인 공간이 상대적으로 넓어졌고 날로 증가하는 대만의 풍요때문이다.
그래서 정열이 넘치는 그의 목소리도 변화하는 시대속에서 갈수록 쓸쓸하게 느껴진다.【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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