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심화… “기형적 고성장”/중·경공업 성장률격차 무려 11.2%P/상반기 중기 5천개 도산… 하루27개꼴 호황의 그늘이 확대되고 있다. 경제지표들의 한결같은 청신호속에 경기는 과열을 걱정할만큼 불붙고 있지만 쓰러지는 기업, 도태되는 업종은 날로 더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들은 돈과 조직력을 앞세워 끝없는 영역확장에 나서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하루에도 수십개씩 무너져가고 중화학공업의 눈부신 호조속에 경공업은 그 존재기반마저 위태로워지고 있다.
호황에도 불황업종은 있게 마련이고 아무리 「논에 물대듯」 돈을 퍼부어도 경쟁력없는 기업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표경기」에 가려진 호황의 사각지대, 즉 「양극화경기」를 방치한다면 지금의 고도성장이 경제체질강화가 아닌 산업불균형 심화로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격차, 그 극적인 양극화현상은 중화학공업과 경공업간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제조업생산은 상반기중 10%의 성장을 기록, GNP증가율(8.5%)을 훨씬 웃돌았다. 한은은 이를 「제조업이 이끈 건실한 성장」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 보면 중공업만 커지고 경공업은 그저 있으나마나 한 위치로 전락한 「가분수」의 모습이 드러난다.
상반기중 중화학공업생산은 1년전보다 13.3% 증가한 반면 경공업은 2.1% 성장에 그쳤다. 성장률만으로도 10%포인트이상의 격차다. 섬유의복 신발등은 작년처럼 마이너스행진이 이어졌다. 당국은 물론 『경공업생산은 지난해 마이너스성장에서 1분기 1·2%, 2분기엔 2·9%로 급격히 호전됐다. 중공업보다 낮은 성장률이지만 호전속도는 오히려 빠르다』며 양극화의 실체를 부정했다.
그러나 경제성장에 대한 부문별 공로를 측정하는 「성장기여율」을 보자. 1분기중 국내총생산(GDP)증가에 대한 제조업기여율은 33.2%(나머지는 농림수산 서비스 건설)로 이중 32.2%는 중화학공업의 몫이었고 경공업기여는 단 1%에 불과했다. 2분기에도 제조업의 GDP생산기여율 38.6%중 중화학공업은 35.6%인 반면 경공업의 공로도는 3%에 그쳤다. 특히 운송장비나 전기전자의 성장기여율이 5∼10%에 이른 것을 보면 이제 그 전체의 무게가 중화학공업의 한 개 단일업종만도 못한, 왜소해질대로 왜소해진 경공업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중소기업도 고도성장의 사각지대다. 재벌기업들은 SOC사업 공기업민영화등 굵직한 「사냥감」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과잉중복투자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만큼 경쟁적으로 영역확장에 나서고 있고 남는 돈을 주체 못해 금융권을 오가며 재테크에 열중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상반기중에만 부도를 내고 쓰러진 업체는 모두 4천9백43개로 하루 평균 27개의 중소·영세기업이 도산했다. 이는 경기가 바닥권을 맴돌았던 92년(4천5백73개)과 93년(4천3백75개)의 상반기 부도업체수를 훨씬 넘는 규모다. 일반가계의 수표·어음부도가 많아졌다고는 하나 상반기 전국어음부도율은 작년 실명제이후와 맞먹는 0.15∼0.17%대를 유지했다. 통화관리가 강화되면 은행문턱은 중소기업들에게만 높아진다. 지난해 기업사정바람을 타고 정상화됐던 대기업들의 어음결제기일도 야금 야금 길어지고 있다.
제조업과 수출호황이 두드러지는 거시지표만 보면 상반기 우리 경제는 어느정도 건강체질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뼈대(중공업)만 굵어지고 살점(경공업)은 붙지 않는, 줄기(대기업)만 커지고 뿌리(중소기업)는 말라죽어가는 기형적 현상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금대로라면 자동차나 조선 전자등 몇몇 전략업종만 살아 남고 나머지업종은 모두 고사해 자동차 반도체를 판 돈으로 생필품을 모조리 수입해다 써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경쟁력상실이나 한계업종을 이유로 도태를 방치하고 있는 정부의 산업정책이 재고돼야 할 시점이다.【이성철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