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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걸려 간신히 왔는데 쫓아내다니…/“야속한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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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걸려 간신히 왔는데 쫓아내다니…/“야속한 조국…”

입력
1994.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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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순씨/부부 함께 입국… 남편 취객에 맞아 사망/북한 공민증도 무시 막무가내 퇴거명령/한영숙씨/당국서 한국국민 인정 호적까지 되찾아/돌연 주민증말소 출국조치… 무원칙 원망 북한 국적의 중국 교포들은 고난의 민족사를 온 몸으로 겪으며 한 맺힌 인생을 살아 왔다. 그리고 천신만고끝에 찾아 온 이 땅에서도 다시 정부의 「무원칙」때문에 갖은 고초를 당하며 조국을 야속해 하고 있다.

 강원 화천이 고향인 이영순씨(55)는 6·25때 고아가 돼 북한 땅을 떠돌다 60년 중국 길림성 안도현에 정착했다. 이 곳에서 중국 국적 조선인과 결혼, 1남1녀를 둔 행복한 생활을 얻었으나 문혁와중에 「국적 불명」이란 이유로 투옥됐다 풀려 난 뒤 이혼당했다. 

 막노동으로 연명하던 이씨는 79년 딸 다섯을 둔 조선족과 재혼했다. 서울 올림픽 이듬해 시부모의 고향 전북 이리의 친척들을 수소문한 끝에 연락이 닿아 초청장을 받았다. 「북한 공민」인 이씨는 뇌물을 주고 중국 여권을 얻었다.

 92년 9월 관광비자를 받아 한국에 온 이씨 부부는 여관에서 일하던중 남편이 93년 11월 술 취한 손님의 행패에 맞아 숨졌다. 중국으로 돌아 가려던 이씨는 우연히 작은 어머니와 재회, 『함께 살자』는 권유를 받고 지난 4월 9일 경찰에 귀순신청을 했다. 그러나 이씨는 외국인 보호소에 수감됐고 4월 30일 「중국인」이란 이유로 강제퇴거명령을 받았다.

 북한 해외공민증과 중국의 외국인 거류허가증은 무시됐다.

 이씨는 5월 27일 안상운변호사등의 도움으로 강제퇴거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무효확인소송을 서울 고법에 냈다. 가처분 신청이 받아 들여져 일단 서울에 머무를 수는 있게 됐으나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재판결과를 기다리며 돈벌이조차 못한채 주위의 도움으로 연명하며 불안한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 이씨는 『40년만에 간신히 찾아 온 조국에서 남편만 잃고 쫓겨 날 줄은 몰랐다』며 『조국이 야속하기만 하다』고 눈물지었다.

 중국 상해에서 태어난 한영숙씨(51)는 서울 출신인 부모를 13세때 모두 잃고 중국인으로 귀화할수도 없어 굶주림속에 「조선인」이란 천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88년 봄 (주)대우의 중국 복주 냉장고 공장 구내식당에 일자리를 얻은 한씨는 『6·25전 서울로 간 언니를 만나는게 평생 소원』이라고 공장 관계자에게 간청, 88년 12월 중국 여권을 받아 난생 처음 조국 땅을 밟았다.

 한씨는 법무부에 자신의 국적을 문의, 『대한민국 국민』이란 확인을 받았다. 이어 부모의 본적지 구청에서 부모의 호적을 찾아 냈다.

 언니는 미국으로 시집간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한씨는 자신의 이름을 호적에 올려 89년 7월에는 주민등록증을 받고 무역회사에 취직도 했다.

 한씨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진 뒤 어느날 공안기관원이 찾아 와 신상과 귀국경위 주민등록증 발급과정 등을 조사한 뒤 『주민등록이 말소될 지 모른다』고 귀띔했다.

 이어 동사무소 직원이 찾아 와 주민등록증을 반납할 것을 요구, 막무가내로 버텼으나 90년 1월 『귀하의 주민등록은 직권말소됐다』는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받았다.

 한씨는 청와대 국회 민자당 서울시 등에 잇달아 탄원서를 냈으나 『영주허가가 없어 주민등록 신고를 할 수 없다』는 답변만을 들었다. 법무부는 『귀하는 불법체류중이어서 출국조치토록 했다』는 「친절한」답변을 보냈다. 이 때부터 한씨는 직장도 잃은 채 숨어 사는 신세다.【박천호·장학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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