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의 갈등에 무너지는 「집」 중견극작가 김광림씨(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가 쓰고 연출해 처음 무대에 올리는 연극 「집」은 지적이고 실험적이다. 절제된 대사, 역동적인 움직임, 무대 상단에 슬라이드로 비쳐지는 짧은 어구들이 이야기전달식의 연극이 아님을 금방 알려 준다.
관능적 영화배우로 알려진 이혜영씨가 소녀같은 아름다움을 갖춘 아내, 또는 야심찬 연극배우로 변신한 것도 놀랍다.
26일부터 9월11일까지(평일 하오7시30분, 토일 하오3시 6시)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하는 이 작품은 극작가로서 또 연출가로서 김광림씨의 고민과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무대라고 볼 수 있다.
무대에서 만나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남자(유오성 분)와 여자(이혜영 분)가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지만, 경제적으로 너무 궁핍하다. 남자는 「나의 연극」을 위해 관객이 몰릴 법한 연극을 외면하고, 여자는 돈을 벌기 위해 밤무대에 나간다.
여자는 남자의 이상을 존중하지만 현실적인 것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남자의 이기심에 진저리가 난 여자는 방황하고 결국 남자가 죽어버리자 집을 허문다. 그리고는 남편을 위한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연극에서 「집」은 인간의 육신을 의탁하는 건물을 의미하는 동시에 정신적인 위안처인 가정을 의미한다. 둘이 사랑해 가정을 꾸리는 모습은 집을 짓는 장면으로 처리되고, 둘 사이의 파탄이 집을 허무는 모습으로 상징된다.
집 짓는 장면을 50번도 넘게 연습했다지만, 마음에 안차는지 연출자는 리허설에서도 집 짓는 장면을 다시 시켰다. 배우들은 아무런 불평없이 고압출 스티로폴로 만든 벽돌을 다시 허문다. 집을 짓고 허무는 과정을 보면서 가정과 예술의 묘한 갈등을 되새기게 된다.【이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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