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새들은…」「살찐 소파…」 80년대 상황이 빚어낸 다양한 삶의 모습과 상처를 반추하는 세편의 문학작품이 동시에 연극으로 올려져 흥미를 끈다. 박완서의 일인칭 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김형경의 장편소설 「새들은 제이름을 부르며 운다」, 황지우의 시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가 그것들이다.
바탕골 소극장에서 일인극으로 공연된 「나의 가장…」에서는 격렬했던 시위현장에서 「생때같은 아들」을 잃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여인이 일상안에 감춰왔던 회한을 오열로 풀어내며 묻는다. 『어찌 그리 독한 세상이 다 있었을까요, 네? 형님. 그나저나 그 독한 세상을 우리가 다 살아내기나 한걸까요?』 박완서의 치밀한 문체를 담아내는 강부자의 넉넉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극단 열린무대―동·수의 창단공연 「새들은…」에서 작가 김형경은 격렬했던 시대에 고락을 같이 했던 운동권 서클 동기생들의 행적을 짚어간다. 자살, 일상으로의 편입, 인도로의 구도여행등. 거친 마룻바닥, 검은색조의 파이프와 금속판으로 얽어만든 구조물안에서 엮어내는 앙상블연기가 산만하긴 하지만 진지하다.
「새들은…」이 암울했던 80년대를 마침표로 서둘러 매듭짓고 있는데 비해 그린씨어터의 「살찐 소파…」는 90년대의 풍요속에서 살찐 소파에 파묻힌 「나」가 자아와 관념의 유희를 벌인다. 구원은 어디에 있을까?
산만한 구성과 어색한 연기를 세련되게 포장하는 차가운 질감의 무대장치와 표현주의적 의상이 돋보인다. 도회적이며 데카당한 분위기, 자연과 선적인 모색으로 초대하는 시각적 이미지, 이를 받쳐주는 명상 음악의 선율은 생명사상과 녹색 이념을 기치로 하는 그린씨어터의 출범을 예사롭지 않게 한다.
분열증적 자아 성찰과 표현양식의 혼합, 구원의 추구가 내재된 이번 공연은 80년대의 경직된 이념에서 벗어나 다변적인 포스트모더니즘과 뉴에이지 사상이 편만한 90년대로의 진입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풀어내고, 매듭짓고, 새시대를 예고하는 소설과 시를 차용해서 무대화한 진지한 공연들을 보고난 후 동숭동 골목길을 돌아나오면서 문득 우리의 극작가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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