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컨(F·BACON·1561∼1626)은 당대인들에게 「동굴의 우상」으로부터 헤어나라고 가르쳤다. 나는 그의 가르침이 오늘날에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시각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오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번 이 논단(7월28일)에서 냉전사고로부터의 탈출을 제안한 것도 우리의 사고를 편협한 동굴의 시각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지금 우리사회가 갇혀 있는 동굴은 비단 냉전이데올로기 뿐만이 아니다. 이 밖에도 경제 또는 비경제부문에 극복해야 할 도그마는 아주 많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규모의 경제」에 대한 신념이다. 기업의 규모를 늘리면 단위당 생산비가 절감되므로 경제적이라는 아이디어는 많은 사람들이 신봉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통하는 데도 있고 통하지 않는 데도 있다. 오죽하면 한 외국 경제학자가 야구장 여럿을 만들 수 있는 부지에 세운 어떤 공장건물을 보고서는 그 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창고라고까지 묘사하였겠는가.
그런데 기업들은 왜 끊임없이 규모를 확장하려 하는가. 그것은 지난날 정부가 중소기업에는 적자생존의 원리를 적용하면서도 일단 대기업만 되면 면파산부를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규모 늘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업의 범위를 넓히면 경제적이라는 범위의 경제를 내세워 너도 나도 사업다각화에 혈안이다. 사업다각화의 극치는 문어발식 경영이다. 문어발식 경영은 개별 재벌에게는 이로운 것이다. 몇 개의 계열기업이 어려움을 겪더라도 다른 기업들이 수지를 맞추기만 하면 그룹 전체로는 오래오래 수명을 유지할 수 있다. 게다가 규모마저 크면 정부가 보호하여 준다. 언론까지 거느리고 있으면 더욱 튼튼해진다.
그러나 경제 전체로 보면 문어발식 경영은 득보다는 실이 크다. 창조적으로 도태되어야 할 기업이 퇴출하지 않고 희소한 실물자원과 금융자원을 낭비하면서 자원배분을 왜곡시키지 않는가. 그렇다고 재벌더러 자발적으로 문어발을 포기하라고 권유해야 소용없다. 룰을 만들어서 유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중인 출자총액상한의 하향조정은 관철되어야 한다.
「규모의 경제」만큼이나 심각한 것은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이라는 인식이다. 돈이 풀리면 틀림없이 인플레이션이 생기고 역으로 인플레이션의 출현은 돈이 풀린 증거라는 경직된 화폐수량설적 사고말이다. 화폐수량설적 사고는 민심수습을 위해 물가안정을 최고 목표로 삼았던 제5공화국 정권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당시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물가를 직접 통제하고 통화량을 조였다. 그러나 단순한 발상이 가져온 부작용은 컸다. 다른 무엇보다도 사회간접자본 부족등 생산기반 구축의 부진은 오늘날까지 성장잠재력 배양의 애로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실제로 1970년대에 겪은 두 차례의 오일쇼크와 끊임없는 신금융상품의 등장으로 통화량과 물가 간의 고리는 끊어진지 오래다. 금융시장이 발달될수록 화폐수량설은 존립근거가 약해진다는 사실은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년도 물가지수목표가 걱정되자 느닷없이 RP규제 강화를 통해 통화량을 규제하려는 화폐금융당국의 발상은 진부하였다. 그들은 은행의 과도한 주식투자에 대해 일찍부터 경고를 하든지 개인대출규모의 확장을 삼가라고 지도했어야 했다. 비록 통화량 조정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더라도 그 과정에서 금융시장이 겪은 대혼란과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정책성과의 빛을 바래게 할 것이다.
경쟁은 언제 어디서나 좋다는 믿음도 문제다. 옛소련 및 동유럽에서의 사회주의 실험실패는 시장메커니즘을 전면으로 부상시켰고 경쟁은 선이요 비경쟁은 악이라는 인식을 널리 보급시켰다.
그러나 경쟁은 대학, 언론, 법조계등에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대학과 관련된 면 두 가지만 살펴 보자. 최근 교육부는 국·공립대학의 연구비를 올려 주되 연구성과에 따라 차등지급하겠다고 공표하였다. 예를 들어 정교수에게는 과거에 비해 월평균 14만원을 더 주되 한 사람에 7만원부터 21만원까지 범위 내에서 분배할 계획이다. 대학사회에도 경쟁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도는 좋을지 몰라도 소탐대실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평생 아리스토텔레스를 열심히 연구하였으나 완벽주의자여서 아직 책 한권 안낸 사람은 7만원을 받고 관변이나 산변에서 프로젝트를 받아 끄적끄적 용역보고서를 써낸 사람은 21만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공부가 좋아 모인 교수사회에서는 이미 알게 모르게 자체적 평가가 이루어져 오지 않았던가.
재임명제도도 마찬가지다. 이 제도는 미국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몰라도 한국사회에서는 적용이 어렵다. 또 정해진 햇수 안에 재임명을 받기 위해 쓰는 논문은 양은 많아질지 몰라도 질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학문의 왜소성을 부채질하기 십상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 도그마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그마로부터의 탈출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약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경직적 사고가 만연된 사회는 결코 동태적인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갖가지 도그마로부터 해방시키자. <서울대교수·경제학>서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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