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의 단편 「사람의 향기」(「창작과 비평」 가을호)는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이 숙연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일차적으로는 이 작품이 우리의 삶을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중년 남자가 어느날 조카에게서 누이의 소식을 듣는다. 얼마전 암수술을 받고 가까스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누이가 병이 재발했을 뿐 아니라 이제 재수술도 불가능한 일종의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누이의 병문안을 간 화자는 오랜만에 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것은 주로 남달리 힘겨운 삶을 살아온 누이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다. 이야기 끝에 누이는 그토록 미워했던 의부(화자의 생부)에게도 마음을 열게 되고, 화자는 자기의 삶을 새삼 돌아보며 누이의 집을 나선다.
흔하다면 흔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처럼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가족의 병과 죽음 이야기가 불현듯 우리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환기시킬 때,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 잊을만하면 날아오는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의 소식이 일상에 바쁜 우리의 삶을 아프게 파고드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일시나마 죽음앞에 숙연해지는 것은, 우리가 별 의식없이 누려온 삶이라는 터전에 대한 경외감이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새삼스러워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보편적인 체험을 담담하게 전해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이 작품이 풍기는 숙연함에는 이보다 더 깊은 이유가 숨어있다고 여겨진다. 작가는 이 흔한 체험 속에, 꼭 흔하지 만은 않은 삶에 대한 인식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누이와 나라는 한 가족의 역사 속에는 이 땅에서의 인간의 삶이 축약되어 있다. 이들의 삶이 기구하다면 기구하지만, 따지고보면 어떤 평범한 삶 속에도 특별하고 고유한 무엇이 있다는 엄연한 인식이 배후에 깔려 있는 셈이다. 작가가 누이의 삶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마치 기적과도 같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견디고 그리고 마침내는 죽음 앞에서 긍정하는 것,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이러한 인정이 삶에 대한 신뢰와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의 향기」는 다름아닌 이 믿음에서 풍겨나온다.
작가가 보여주는 바대로, 자기만의 독자적인 삶을 사는 일과 남과의 관계를 맺어나가는 일은 별개의 요구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진정으로 도덕적인 요구는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가? 「사람의 향기」는 해답을 위한 작은 시도일 뿐, 작가의 화두는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문학평론가·덕성여대교수>문학평론가·덕성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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