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팽창… 재정인플레” 우려/경기조절외 통일비용 마련도 거둬들인 세금을 몽땅 쓰느냐(균형예산), 아니면 거둬들인 세금의 일부를 남겨 빚을 갚는데 사용하느냐(흑자예산)를 놓고 민자당과 정부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김영삼대통령이 정부의 손을 들어 줬다. 내년도 예산편성의 기조가 흑자예산편성으로 굳어진 것이다.
김대통령이 정치논리에 입각한 당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물가안정을 위해 경제논리를 택한 것이다. 당의 주장대로 거둬들인 세금을 모두 지출하는 균형예산을 편성할 경우 내년도 예산증가율은 최고 19·8%(농특세포함)에 달해 초팽창예산이 되어 재정인플레가 심각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대통령은 내년에도 경제정책운용의 최우선순위를 물가안정에 둔다는 방침아래 흑자예산편성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흑자예산편성을 둘러싼 당정간의 논란에는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 정부(경제기획원)는 내년도 세입규모가 금년보다 15∼16%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를 몽땅 써버리면 그렇지 않아도 과열기미를 보이고 있는 경기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경제안정기조를 해쳐 물가불안이 가중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예산정책과 경기정책 및 물가정책을 모두 총괄하고 있는 기획원으로서는 흑자예산편성이라는 「묘수」를 통해 경기도 조절하면서 물가도 잡고 예산구조도 건전화시키는 효과를 거두겠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국내경기의 성장세가 내년에도 지속되어 95년 세입규모가 50조3천1백75억원으로 금년예산대비 16.3%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다 농특세 1조5천억원을 더할 경우의 총세입규모는 51조8천1백75억원이나 된다. 농특세를 포함한 세입규모 증가율은 무려 19.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몽땅 세출예산으로 사용할 경우 예산증가율이 19.8%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팽창예산도 보통수준의 팽창예산이 아니다. 금년도 일반회계 본예산의 증가율이 13.7%이고 이제까지의 예산증가율은 평균 14%선밖에 안된다. 일반회계와 재특을 포함한 예산증가율도 16.8%수준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때 예산증가율 19.8%의 초팽창예산을 편성할 경우 재정인플레심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지 않아도 물가불안이 심화되어 가고 있는데 이같은 초팽창예산을 집행할 경우 불난 데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경제논리로만 보면 지금상태에서의 균형예산편성은 물가안정의지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사실 내년도 세수전망이 너무 좋아 흑자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수 없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수를 억지로 줄이기 위해 감세정책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금을 깎아주기는 쉽지만 새로운 재정수요가 생길때 세금을 신설하는 것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예산실 당국자는 『흑자예산편성은 경기조절적 측면도 있지만 통일에 대비한 재정기반마련의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지금의 흑자예산을 통일되면 언제든지 통일비용으로 동원해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민자당은 기획원의 흑자예산방침에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언제는 돈이 없어 사회간접자본(SOC)시설을 건설하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쳐놓고 이제와서 돈이 많이 생길 것 같으니까 저축해놓겠다는 발상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가채무상환도 중요하지만 시급한 SOC확충을 위해서는 세입만큼 세출규모를 정하는 균형예산을 편성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흑자예산 편성반대의 진짜 배경은 지역구사업확대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내년도 지방자치제선거를 앞둔 당으로서는 지역사업확대가 절실한 입장이다. 흑자예산편성 반대의 명분은 SOC확충이지만 속마음은 선거공약실천을 위한 재원마련이라는 지적이다.【이백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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