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등 통한 반대론 안먹혀/「선거의해」 고려없어 볼멘표정 민자당이 새해 예산안 논의과정에서 매우 곤혹스런 입장에 처해 있다. 김영삼대통령이 23일 당정간에 논란을 빚어왔던 흑자예산문제에 대해 정부쪽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정재석경제부총리의 보고를 받고 『금년과 내년은 물가안정이 강조돼야 하는 시기이므로 95년예산에서 세출을 절약해 마련한 돈을 국가채무상환에 사용토록 한 것은 잘한 일』이라며 『당정협의 및 국회심의과정에서 이 방향이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지시는 민자당 예결위가 22일 자체세미나에서 집약한 의견을 무색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지난 주말 정부가 새해예산안의 흑자편성기조를 밝혔을 때 이미 당정책관계자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세미나에 참석한 의원들의 반대론은 한층 더 톤을 높였다.
요컨대 『통일에 대비, 세원을 확충하면서 세출의 1∼2%선인 5천억∼1조원정도를 양곡증권상환등 국가채무변제에 사용한다』는 정부방침의 취지는 좋지만 정치현실을 지나치게 외면한 발상이라는 지적이었다. 첫째는 국가경쟁력강화를 위한 사회간접자본 확대요구는 물론 지자제선거등 잇단 정치일정을 앞두고 지역사업등의 재정수요가 폭발할 시기에 예산일부를 국가채무변제에 쓰겠다는 것이 너무 「한가」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내년이 「선거의 해」임이 당연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비록 흑자예산의 경제논리를 인정한다고 해도 우루과이라운드비준안처리등을 앞두고 이를 설득할 정치논리가 궁핍하다는 것이다. 특히 재정부담등을 이유로 내년 추곡수매를 동결하겠다고 공언한 정부가 1조원 가까운 돈을 채무변제에 사용하겠다고 하면 농민정서가 이를 어떻게 수용하겠느냐는 것이다.
셋째는 여야 가릴것없이 예산심의때 한푼이라도 더 끌어가려고 난리인데 국가채무변제항목의 돈이 과연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민자당도 흑자예산자체를 나쁘게 보지 않으며 6조원에 달하는 양곡증권채무와 2조원에 달하는 비료계정 적자를 두고는 건전한 재정운용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또 물가불안이 신경제의 가장 큰 적으로 부상될 우려가 있는 만큼 재정의 경기조절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따라서 언뜻보면 『당정이 같은 얘기를 서로 다른 측면에서 말하고 있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접근방식과 기본입장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는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 이상득정책조정실장등은 『오는 27일의 예산당정회의 이전에 정부의 생각을 좀더 들어봐야겠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편성방향의 이상론에 너무 힘을 주다 보면 내용을 잃기 쉽다』고 지적했다.
풀어말해 앞서 언급한 문제점들에 대한 충분한 검토없이 흑자예산방침부터 밝히는 것은 『모든 것을 국민의 조세부담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현재도 세계잉여금이 생기면 50%를 국가채무변제에 우선 사용토록 돼있는 만큼 채무변제의 논리가 빈약하고 나아가 통일비용문제도 제반 관련기금의 운영에 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상 최초로 50조원을 넘길 것으로 보이는 새해예산안은 일단 주도권이 정부쪽으로 넘어간 느낌이지만 내년이 「선거의 해」인만큼 민자당이 흑자예산논쟁에서 마냥 물러설 수만 없는 처지이다.【이유식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