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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가을인가봐/박완서칼럼(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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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가을인가봐/박완서칼럼(화요세평)

입력
1994.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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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은 길었다 라고 써놓고 보니 아직 과거형을 쓰기는 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노염이라는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까.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더위는 공포스럽기조차 했다. 신문과 방송은 기상관측 이래 초유의 기록적인 더위라는 것을 거의 매일매일 외쳐대는데도 뭐가 부족한지 나는 나대로 아이들에게 내 생전에 처음 겪는 더위라는 걸 강조하곤 했다. 마치 내가 기상관측의 역사보다 더 나이를 먹은 것처럼. 확실히 나이를 먹으니까 더위를 더 타는 것 같다. 과격한 운동이나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뙤약볕을 무릅쓰고 나다닐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어도 혈기가 들끓는 것도 아니면서 그다지도 참을성 없이 굴었던 것은 미체험에 대한 공포감이 아니었을까. 몇십년의 여일한 경험의 반복 때문에 매사가 시들하다가도 막상 안 겪어 보던 일에 부닥치면 낯가림부터 하게 된다. 올핸 매미소리 또한 처음 들어보는 것처럼 유난스러웠다. 아파트단지가 오래되면서 나무도 무성해져 성장이 빠른 나무는 거목으로 자란 것들도 있다. 그 녹음을 바라볼 때마다 어린 날 원두막에서 듣던 매미소리가 생각나 아련한 그리움에 잠기곤 했었다. 그러나 그건 매미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었을 때 얘기고, 마치 쨍쨍한 더위가 음향으로 바뀐 것처럼 작열하는 소리로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온종일 들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고역스럽던지. 저것들만 저렇게 번성해서 극성을 떨어도 되는 것일까? 마치 그것들 때문에 가뭄이 들고, 햇볕이 그렇게 무진장 달아오르는 것처럼 싫고 짜증스러웠다.

 나는 에어컨바람을 싫어하고 체질에도 안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올핸 그것도 들어맞지 않았다. 즐겨 찾던 찻집도 냉방이 잘 안돼 있다 싶으면 즉시 발길을 돌려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은 집을 찾아다녔고, 냉방이 잘 된 백화점이나 빌딩에서 필요이상 오래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몸을 충분히 얼렸다고 생각하고 폭염 속에 나왔을 때의 불쾌감을 무엇에 비길까. 살갗에서 냉기와 열기가 기분 나쁜 층을 이루면서 뒤통수가 물혹이라도 생긴 것처럼 부풀어 오르는 느낌은 지나친 냉방 때문인지도 모르는데 더위 탓만 했다. 곧 몸은 다시 달구어지고 이마를 타고 내린 땀이 눈으로 흘러들어 부옇게 흐려진 시각으로 불덩어리같은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걸 발견했을 때의 기분은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고작 「이방인」의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죽이는 장면이나 떠올리면서 살의까지는 안 가더라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대상도 분명치 않은 증오가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걸 느끼곤 했다. 어쩌면 그 더위에도 들에서 가뭄과 싸우면서 곡식과 푸성귀를 가꾸고 수확하는 농사꾼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일말의 양심조차 없었는지. 올 여름은 그렇게 파렴치하기도 했다. 식구들이나 친지들하고 더위를 피해 잠시 야외나들이를 다녀와서도 딴 사람들은 거기서 즐거웠던 일, 서늘했던 일만 기억하는데 나는 가느라고 고생한 일, 가서 꼴 보기 싫었던 일, 돌아올 때 더 더웠던 일만 기억에 남겨가지고 불쾌감을 상승시킬 생각만 했다.

 이러다 가을이 안 올지도 모른다는 망령된 생각이 들 만큼 허구헌 날 계속되는 더위, 잠 못이루는 수많은 열대야 끝에 마침내 상큼한 가을바람을 느꼈다. 처음에 그것은 너무 기다린 끝에 오는 착각이 아닌가 싶을 정도 어렴풋해 촉감이라기보다는 냄새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새벽녘이면 여름내 구박하던 홑이불을 끌어 덮어야 할 만큼 그 어렴풋하던 것은 확실해졌다. 추석을 한달 앞둔 백중달은 또 어찌나 휘영청하던지. 이마에 달빛이 차오르자 샘물에 적신 것처럼 심신이 쇄락해지는 걸 느겼다. 강력한 1급태풍도 못 밀어낸 열대성 고기압을 어느 누가 그렇게 가볍게 살짝 밀어낸 것일까. 자연의 섭리에 대한 신뢰감은 거의 행복감에 가깝다. 아마 올 여름이 보통 여름이었다면 가을바람이 이렇게 반갑고 기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정서는 찬 바람만 나면 으레 산다는 것의 쓸쓸함, 허망함에 잠기게끔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올해는 그런 감상에 잠기는 대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연달아 생각나면서 꼭 하고야 말 것같은, 다 잘될 것같은 의욕이 꿈틀대는 걸 느꼈다. 의욕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서 남에게 내세울 만한 일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규칙적인 아침산책, 적당한 일, 행복한 독서, 외로운 여행, 격조했던 친구들과의 담소등 철저하게 개인적인 일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나에게는 대단한 일이 될 것이다.

 더위 먹은 개인에게도 찬 바람과 함께 이성과 감성의 균형이 돌아오듯이, 다소 무엄하게 들리겠지만 아무리 곱게 봐주려도 더위 먹은 짓이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수가 없는 미숙한 용기, 더욱 미숙한 찬양, 과장된 증오, 분주한 편가르기로 들끓던 우리 사회도 헛된 열기를 식히고 이성을 회복하기를 간곡히 바란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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