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주부가 바늘을 잡으면…(장명수칼럼:1711)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주부가 바늘을 잡으면…(장명수칼럼:1711)

입력
1994.08.21 00:00
0 0

 떨어진 단추를 단다든가 터진 바지 단을 꿰매는 정도는 급하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옷을 만들거나 고칠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바느질 실력이 있더라도 누구나 다 바느질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건강하고,마음이 안정되고, 누군가를 위해 옷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어야 차분하게 재봉틀앞에 앉을 수 있다. 여자들은 불행할 때 바느질이나 뜨개질로 시름을 달래기도 한다.실련한후 며칠 밤을 새우며 스웨터 몇장을 떴더니 마음이 가라 앉았다는 여성도 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아들 딸 옆에서 같이 밤을 새우며 간식등을 준비 해 주는 열성 어머니들은 대개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바느질을 하든간에 바느질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심리상태가 안정돼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양재특강의 인기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양재특강은 지난 십여년동안 거의 자취를 감출만큼 관심을 끌지 못했는데, 최근 다시 수강생이 몰리기 시작하여 백화점 문화센터등이 다투어 양재특강을 개설하고 있다. 미도파·롯데·현대·애경·그레이스 백화점등은 가을 강좌부터 양재특강을 신설하거나 늘렸고, 브라더 미싱이 재봉틀 구입자들을 위해 작년부터 시행하는 양재교실도 수강생이 크게 늘어 교육장을 계속 늘리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그 어느나라 여성들 보다도 전통적으로 바느질을 많이 해 왔다. 대가족의 한복 바느질에서 간단한 양장에 이르기까지 온 가족의 옷을 만들어 입히는 것이 여자들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바느질은 가정에서 사라졌고, 타계한 원로 디자이너 김경애씨등이 70년, 80년대에 옷본 보급운동을 폈으나 여성들은 한번 놓은 바늘을 다시 잡지 않았다.

 미국·유럽·일본등 선진국들의 백화점에 가면 대부분 바느질 용품 코너가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각종 패턴(옷본)·단추·실·바늘·레이스등 온갖 바느질 용품이 다 갖춰져 있어서 초보자들도 바느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우리나라 백화점들도 70년대말에서 80년대초까지 옷본등을 갖춘 바느질 코너를 두고 있었으나 고객이 없어 문을 닫았다.

 우리 사회가 다시 바느질하는 여성들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혼란이 어느정도 정리되었다는 신호다. 그동안 여성들은 알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여유가 없어서 바늘을 잡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대량생산된 값싼 의류가 쏟아져 나와 가족들의 옷을 스스로 만들 필요도 없었지만, 주부들은 사회변화에 적응하느라고 차분하게 재봉틀 앞에 앉을 겨를이 없었다.

 이제 여성들은 옷본을 펴 놓고 자신이 입을 웨딩 드레스나 자녀들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각 백화점에는 멀지않아 바느질용품 코너가 등장할 것이다. 바느질하는 여성을 갖는다는 것은 안정된 사회,안정된 가정의 한 상징이다.<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