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프랑스 알스톰사와 맺은 고속전철 TGV도입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다면 프랑스사람들의 기분은 어떠할까. 프랑스 바스티유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겸 상임지휘자인 정명훈씨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당하고 해임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쯤 떠올려 보게 되는 생각이다. 그는 항의서한을 내고 오페라단측을 고소하는등 외로운 싸움을 지금 벌이고 있다.
예술을 어느 나라보다 사랑한다는 프랑스사람들의 생각이 알고 싶어진다. 이번 해임조치를 보는 프랑스의 양심은 무엇일까.
「정명훈」은 「TGV」와 함께 최근의 한국과 프랑스관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정씨가 89년 한국인 최초로 서양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세계적인 정상음악단체인 바스티유오페라극장의 음악책임자가 된 것을 한국사람들은 자랑스럽게 여겼다. 프랑스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러한 바탕에서 서울과 부산을 잇는 고속전철 차종이 TGV로 결정됐을 때 우리는 어딘가 친근감을 느끼고 TGV의 속도만큼이나 두 나라의 관계가 가까워진 것으로 평가했었다. 이점은 93년 9월 예술가까지 수행원으로 대동하고 한국을 방문한 미테랑대통령이 정씨를 격찬한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 기억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나온 정씨의 해임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해임원인이 정씨의 능력때문이 아닌 극장의 경영사정과 정권의 성향에 따라 이뤄졌다고 하는 점에 우리의 아픔이 있다. 정씨는 지난 5년간 바스티유오페라극장에서 음악적으로 많은 업적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능력에 대해선 미테랑대통령을 비롯, 전문화부장관 자크 랑씨 및 많은 음악평론가들이 칭찬한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아무리 경영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뛰어난 예술가를 계약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해임한 조치는 폭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난폭한 방법은 정씨의 말처럼 예술가를 죽이는 행위요 그것은 문화대국을 자부하는 프랑스측이 더 잘 알 것이다. 이번 해임조치에 어떤 편견도 작용하지 않았길 바랄 뿐이다.
경영이 어렵다니 계약내용을 그대로 지키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얼마든지 대화를 통해서 문제가 된 연봉 및 계약기간을 조정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문제가 법정으로 비화되는 것은 프랑스의 수치가 아니겠는가.
우리정부도 정씨의 문제를 한 개인의 문제란 차원을 떠나 지원방법등을 진지하게 검토해보아야 한다.
정씨는 해외에서 우리 국위를 떨치는 음악인으로 우리의 긍지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세계에 내세울 가장 위대한 한국인의 하나로 우리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그가 세계적 대가로 대성하기까지는 정부의 지원없이 독력으로 컸다. 이제 나라의 커다란 체면이 된 그를 정부가 언제까지나 혼자 내버려 둘 수 없다. 개인문제라고 외면하는 것은 한국과 프랑스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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