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에서 1950년대에까지 실존주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의 경향이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카뮈의 명성은 실존주의 문학을 상징하듯 온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실존문학이 탄생한 배경은 바로 유럽의 역사와 통한다. 러시아혁명, 나치즘의 등장, 스페인전쟁, 2차대전을 겪으며 지적 풍토는 이성과 자유의 발전을 믿는 낙관주의가 크게 좌절을 당했다. ◆6·25가 끝나면서 실존주의 사상과 문학은 우리나라에도 유행처럼 밀어닥쳤다. 사르트르의 「구토」나 카뮈의 「이방인」을 모르면 지식인 행세조차 못할 형편이었다. 억압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포악성에 절망한 지식인들은 실존주의가 구원의 샘이기도 하듯 반기고 몰입했다. ◆하지만 우리의 척박한 지적 풍토는 실존의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수용한 느낌이 없지 않다. 특히 문학에선 실존의 뜻을 소화못한채 불안이니 전율이니 하는 말에 매달려 어설픈 「흉내」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실존사상에서 강조된 것은 개인의 주체성이었는데, 그것을 옳게 파악했었는지 의심스럽다. ◆요즘 주사파들이 떠들어 대는 주체사상이란 것이 과연 지성의 비판을 얼마나 받고 여과되기나 했는지가 또한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대학에선 학생회가 추천한 강사가 강단에 서서 북한이 지령한대로 주체사상 강좌를 했다고 한다. 이것이 과연 학문의 자유인가.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 예술의 자유는 그것이 보호받을 가치가 있을 때에만 타당한 것이다. 비판과 여과작용을 상실한 지성은 이미 지성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지적 허무주의와 방황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경고를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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