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 김매자씨 방중때 확인/51년 북경체류 기초동작·훈련법 등 정립/문하생들 「최식 춤」 책 제작 가르쳐 한국 현대무용의 선구자로 파란 많은 삶을 살았던 최승희(1911년∼?)가 중국경극의 무용부분의 체계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무대예술인 경극에는 조선 무용가 최승희의 춤사위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다.이같은 사실은 최근 중국을 방문했던 김매자씨(창무예술원 예술총감독)가 최승희의 중국인 제자였던 왕시영교수(63·중국 희곡학원)의 증언을 듣고 확인했다.
한국전쟁 중인 51년 3월부터 약 1년간 중국에 체류하며 북경희곡학원에서 춤을 가르쳤던 최승희는 이 기간에 경극 무용동작의 기초와 신체훈련 방법을 체계적으로 정립했다는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하며 경극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그로서는 짧은 시간이지만 「최승희식 경극 무용」을 만들어 중국인들에게 선물한 셈이다.
왕교수는 최승희가 북경 체류시 배출한 1백20여명의 문하생 중의 한명이며 이 학원의 경극 조교였다. 그는 스승이 떠난 이듬해인 53년 자신이 배운 「최승희식 경극 무용」을 책으로 기록했고 이 학원에서 오늘까지 이 책을 교재로 경극배우들을 가르치고 있다.
왕씨는 『최승희선생은 경극의 원류인 곤극에서 부터 이론적 연구를 했다. 그는 내가 보인 시범동작을 여러 차례 관찰한 후 경극의 기초 동작을 정리하고 새로운 창작춤을 만들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연기보다 무용동작 훈련을 먼저하는 그의 지도교안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부족함이 없다. 그의 훈련방법과 무용창작법은 뛰어나고 체계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최승희의 작업은 경극의 교육방법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도제식으로 전해지는 배역을 맡아 배역에 주어진 무용만을 익혔던 경극배우들은 최승희의 지도로 어떠한 배역과 무용도 소화할 수 있게 됐다.
최승희는 여러 차례 공연을 통해 조선무용과 발레 등을 선보이며 중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그러나 중국 예술의 자존심인 경극에까지 그의 발자취가 남아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다.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 최승희연구에도 중요한 사실로 첨가될 것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최승희는 숙명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유명한 이시이 바쿠(석정막)를 따라 도일하면서 열정에 찬 「춤의 인생」을 시작했다. 「세 가지의 코리안 멜로디」등 수많은 창작무용을 만들며 세계적인 무용가로 떠올랐던 그는 남편을 따라 월북, 북한무용계를 주도하다 어느날 역사의 기록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김매자씨는 『베일에 싸였던 비운의 무용가 최승희는 한국 현대무용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천재적 무용가이다. 최근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월북무용가 혹은 친일무용가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그의 중요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의 삶의 자취를 온전히 기록하는 것이 잃어버린 우리 현대무용사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라고 말했다.【김철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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