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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테러범/카를로스/중동평화기류에 “이용가치 소멸”… 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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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테러범/카를로스/중동평화기류에 “이용가치 소멸”… 덜미

입력
1994.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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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변호사아들… “83명 살해”자백/프랑스기 납치·레이건암살단 지휘하기도/83년이후 활동뜸해 피살·은신설 등 엇갈려/불체포조, 18년추적끝 수단입국 정보포착 변장의 귀재이자 신출귀몰하는 행동으로 악명을 떨친 세기의 테러리스트 카를로스(일명:자칼)가 20여년간의 도피행각끝에 체포됐다. 뮌헨올림픽 선수촌 테러등 지난 70∼80년대 세계를 무대로 암살·납치등 각종테러사건을 주도한 카를로스는 프랑스 방첩기관의 18년간 끈질긴 추적끝에 꼬리가 잡혔다.

▷검거◁ 카를로스는 지난 주말 수단 하르툼시의 은신처에서 수단내 외국 기관에 대한 테러음모를 꾸미던중 수단 보안요원들에게 체포돼 프랑스로 신병이 인도됐다. 수단당국은 15일 카를로스가 위조 외교여권으로 아랍인 동료들과 수단에 입국,감시해 오던중 지난주 프랑스가 그의 신원을 확인해주어 체포했다고 밝혔다.

 카를로스는 15일밤 프랑스 방첩기관으로 이첩된 후 상테형무소에 수감됐으며 16일부터 과거행적에 대한 본격조사를 받고 있다. 프랑스 수사당국은 카를로스로부터 유럽과 중동에서 프랑스인 15명을 포함,83명을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프랑스 방첩기관은 지난 76년 「카를로스 체포조」를 구성, 끈질기게 추적해오다 최근 그가 시리아에서 수단으로 입국했다는 정보를 수단에 통보했다.

 프랑스법원은 지난 75년 프랑스 방첩요원 2명을 살해한 혐의로 92년 그에 대한 궐석재판을 열고 종신형을 선고한 바 있다.

▷관련테러◁ 카를로스는 72년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를 사망케한 뮌헨올림픽 선수촌 공격의 행동대원으로 가담했으며 74년에는 일본적군파 요원의 석방을 요구하며 헤이그주재 프랑스대사관을 점거했다.

 이듬해인 75년 6월에는 프랑스 방첩요원 2명을 살해했으며 12월에는 빈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 를 공격,당시 회의에 참석한 OPEC각료 11명등 70명을 인질로 잡고 여객기를 납치해 리비아로 비행한뒤 10억달러의 몸값을 요구했다. 이어 76년에는 에어프랑스기를 공중납치했다. 그의 잇따른 납치 테러는 전세계를 경악케했으며 각국 수사기관의 지명수배 1호로 떠올랐다.

 그는 80년대 들어 테러대상을 프랑스에 집중시켰다. 82년 3월 파리―틀루즈열차 폭탄, 4월 파리 샹젤리제 폭탄테러등을 주도했다. 또 81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대통령 암살을 위해 미국에 파견된 리비아특공대의 지휘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행적◁ 83년 서베를린 주재 프랑스 문화원 폭탄테러 사건을 주도한 이후 뚜렷한 행동을 보이지 않은 카를로스는 80년대 중반이후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지는듯 했다. 특히 86년 이스라엘의 한 신문은 그가 아랍권에 대한 정보를 너무 많이 알고 있어 리비아 정보기관에 의해 암살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변신의 귀재인 그가 헝가리등에서 살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으며 85년 시리아로 피신,부인·딸과 함께 은신하고 있다는 설도 나돌았다. 또 헝가리언론들은 90년 그가 헝가리정부의 비호아래 부다페스트에서 호화생활을 하고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의 아내인 막달레나 콥도 서독적군파 요원이었으며 80년대초 게릴라 활동으로 체포된뒤 85년 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장과정◁ 카를로스는 그가 게릴라 활동을 하면서 사용한 수많은 가명중의 하나이다. 본명은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이며 1949년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변호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3명의 아들에게 레닌의 풀네임인 일리치, 블라디미르, 레닌을 하나씩 붙여 주었다.

 15세때인 64년부터 공산주의학생운동을 벌이던 그는 쿠바로 건너가 게릴라 전술을 익혔으며 68년에는 모스크바 루뭄바대학에 유학, 소련 KGB로부터 정보요원 훈련을 받았다. 그뒤 요르단등지에서 본격적인 테러훈련을 받은 그는 73년 12월 런던에서 유태인 백만장자 조셉 시프를 암살하면서 악명높은 국제테러리스트로 떠올랐다.

 한편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런던의 은신처에서 드골프랑스대통령 암살음모를 다룬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추리소설「자칼의 날」을 발견,그는 자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그가 이 소설에 나오는 살인청부업자를 연상케 하는 신출귀몰한 활약상을 보이자 전세계수사기관과 언론은 「자칼」이라는 암호명을 붙여주었다.  제국주의와 시오니즘 타도를 외치고 있는 그는 터키인민해방전선, 일본적군파, 팔레스타인 인민전선등과 연계한 테러활동으로 악명을 떨쳤다.

▷체포배경◁ 카를로스가 체포된 것은 시대의 산물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냉전이 끝나고 중동의 대결상황이 평화구도로 바뀌면서 그는 더이상 테러리스트로서의 이용가치가 없어져 은신할수가 없게 됐다는 것이다.

 카를로스는 과거 중동이나 공산국가에서 수차례 붙잡혔으나 이들 국가가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풀어주고 오히려 은신처를 제공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그는 더이상 구공산국가들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됐고 구동독의 정보기관인 슈타지등에서 갖고있던 그에 대한 정보가 공개돼 활동하기가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이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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