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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열고 다양한 경험을(8·15 49돌 특별좌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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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열고 다양한 경험을(8·15 49돌 특별좌담:하)

입력
1994.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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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경쟁만이 재창조·풍요 보장/국제게임질서 수용하되/우리고유목표 조화되게□참석자 : 김경원 (사회과학원장·진행)

김여수 (서울대교수·철학)

김인준 (서울대교수·국제경제학)

최상룡 (고려대교수·정치학) <이상 가나다순>

 ▲김경원=우리는 통일과 국제화의 실현이라는 두 가지 중대한 도전을 맞고 있습니다. 어제는 한반도의 특수상황에서 비롯된 통일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오늘은 국제화문제를 이야기해 봅시다. 국제화는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유래되는 도전입니다. 먼저 국제화의 개념정의부터 해야 하겠습니다.

 ▲김여수=국제화는 우선 선진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국제적 게임의 규칙을 내면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주어진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여 적절하게 사용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국제질서라는 것은 지난 3백∼4백년동안 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된 국제사회에 의해 주도돼 왔습니다. 우리나라가 여기에 연결된 것은 개화기에서부터 1백여년 정도에 불과합니다.갓 벗어 던지고 옷을 갈아 입는 과정인 셈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국제질서의 기본적 취지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므로 수용하기 힘든 부분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접목시키는 방법을 찾는 일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일 것입니다. 국제화가 좋기는 하지만 국제적인 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일이 국제화의 당위성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국제질서로의 편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전적으로 옳지는 않다는 의식이 상당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질서를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와 보다 융화되도록 수정할 수 있느냐, 즉 국제질서의 재창조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경원=국제화를 하느냐 마느냐는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는 인식이 중요하며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일 각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제화를 거부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는 북한의 실례로 적나라하게 경험적·과학적 실험에 의해 우리는 보고있습니다. 국제화는 일단 신바람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과거에는 강대국들만 국제화의 혜택을 누려왔습니다. 제국주의정책의 틀속에서 군사력을 앞세워 타국에 무역을 강요했고 힘없는 나라에는 해외상업활동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군사력을 전제하지 않고, 제국주의를 추구하지 않고도 경제활동무대를 전세계로 확대할 수 있는 것이 국제화라고 봅니다. 다만 세계를 우리의 경제활동무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수반되는 의무와 조건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받아들여야겠지요.

 ▲김인준=김려수교수께서 지적한 것처럼 국제화가 제대로 되려면 스스로의 정체성확보가 필요합니다. 국제화는 필요한 것이며 특히 우리처럼 소규모 개방경제체제에서는 유일한 생존의 길이라고 보여집니다. 예를 들어 자본자유화문제를 보자면 선진국에서 자본자유화가 이루어진 것은 1980년대입니다. 경제가 완전히 성숙한 단계에서 자본자유화가 이행된 것이지요. 우리의 경우에는 경제가 완전히 성숙되지 않은 단계에서 국제화도 함께 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통일이라는 경제적 비용까지 고려하면서 국제화를 해야 합니다.

 국제화의 특징은 정치·안보중심시대에서 경제중심시대로 옮아가면서 국가의 역할도 변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제화를 전제로 한다면 경제정책도 과거와는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대기업의 비중이 점차적으로 커집니다. 대기업의 소유집중도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경제중심시대에서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 달라지는 상황에 우리가 얼마나 적응하느냐가 향후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상룡=저는 국제화를 「정치의 국제화, 마음의 국제화, 상품의 국제화」등 세 가지로 봅니다. 먼저 상품의 국제화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는 일본인데 지금도 여전히 국제화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정치와 마음의 국제화가 안되고 있다는 자각입니다. 상품의 국제화가 가장 성공한 나라가 가장 덜 국제화된 역설을 일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치의 국제화는 우리가 일본보다 나은 위치에 있지 않나 여겨집니다. 각계 엘리트들이 서구식 교육을 받았다는 점에서 서구화되었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정치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일상적으로 당면하는 국내문제의 국제적 성격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안될 경우 나쁜 의미의 지방화가 되고 좋은 의미의 지방화는 국제화와 연결된다고 봅니다. 중앙집권화의 안티테제로 나온 것이 지방화·국제화라고 한다면 결국 지방화의 두 얼굴인 셈이지요. 지방화의 바람직한 진전을 위해서는 국내 정치문제의 국제적 성격을 간파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각급 레벨에서 양성돼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마음의 국제화는 결국 외국에 많이 나가는 것과 연결되겠지만 그 양으로 보면 일본이 어느 나라보다 국제화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오히려 바깥에서 들어와서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국민의식수준이 참다운 「마음의 국제화」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사실 자성해보면 우리 국민의식만큼 반국제화적인 것도 없다고 봅니다. 인종주의, 문화에 대한 편견이 강합니다. 긴 안목에서 본다면 교육차원에서 이 문제를 담당해야 된다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김경원=정치의 국제화의 가장 큰 문제는 역설적으로 민주화라고 봅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국회의원들은 지역주민들의 이익에 충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회민주주의의 발달은 곧 정치지도층의 지방화를 초래하고 시야가 국경선밖으로 넓어지는게 아니라 선거구로 좁아지는 것입니다. 현안인 UR비준문제만 해도 선거구민중 가장 목소리가 큰 이익집단에 민감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정치의 민주화를 진행하면서 국제화를 이루려면 정치인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고도의 의도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최상룡=내용과 수준은 다르지만 남북 모두 민주화와 국제화를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봅니다. 북한은 상대적인 의미지만 민주화하고 국제화할수록 체제를 유지하고 평화공존할 가능성이 크며 남한의 경우도 국내민주화를 하고 국제화하면 할수록 한 단계 수준을 높이게 되겠지만 실패하면 남미의 경우처럼 엄청난 침체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여수=국제화라는 게 바람직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상임은 당연합니다. 1인당 GNP가 8천달러가 되는 상황에서 국제화의 과제가 대두된 것은 다행스런 일입니다. 60년대에 오늘날의 과제가 닥쳤다면 국제화는 곧 죽으라는 얘기로 들렸을 것입니다. 국제화의 역사를 보면 대포를 들이대고 문열라고 해서 우리 의사와 전혀 다르게 시작돼 국제화에 대한 저항이나 정서적 반감이 저변에는 상당히 깊게 깔려 있습니다. 지적인 훈련을 받은 계층이 훨씬 강한 양상을 보입니다. 그러므로 국제화라는 명제 아래서 우리가 받아들이고자 하는 질서를 재구성하기 위해 일정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김경원=역으로 「국제통상체제가 확대발전되지 않고 긴축축소되는 방향으로 간다면」 하는 가정도 가능합니다. 강대국들이 국제무역질서를 확대하지 않고 자국의 통상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보호주의적인 방향으로 간다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될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7면에 계속>

<6면에서 계속>

◎많이 얻으려면 넓은 바깥으로/지나친 문화쇄국주의 되레 역효과/「닫힌 세계관」 풀려면 교육이 지름길/각국 골고루체험 지식인 많아 미래한국 “청신호”

▲김인준=국제화는 다원주의를 의미하며 지방분권화와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유럽인들은 한 국가의 국민, 유럽시민, 세계시민으로 생각하면서 동시에 지역의 이해관계를 따집니다. 한꺼번에 다원적 사고를 갖는 것이지요. 최교수께서 인간의 마음과 관련해서 국제화를 언급했는데 국제화가 우리나라에서 저항을 받는 이유는 19세기말 개화파 개혁이 실패하고 그들이 친일파로 몰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음을 돌려놓는 일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1년가량 외국에 나가 공부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국제화의 한 방법입니다. 고교생들의 해외연수는 오도된 세계관을 심어줄 수도 있지만 대학 1∼2년생이 외국을 돌아보는 것은 국제화에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김경원=국제화에 장애가 되는 요소는 문화적 순수주의입니다. 고유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이질적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내 문화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국제화를 방해합니다.

 ▲김여수=우리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도 고유한 것을 보존하는데 성공했다는 외국사람들의 얘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우리가 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김경원=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최근들어 이질적 문화의 영향권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밖으로부터의 문화적 영향을 받으며 살아온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 경제만 경쟁을 통해 체질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도 이질적 문화와 부딪치면서 더 풍요로워지고 더 창조적이 됩니다. 지나치게 문화보호주의를 고집해서는 안되며 문화에 있어서도 개방으로 나가야 합니다. 일본 대중문화의 수입금지조치도 이제는 졸업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수입금지정책이 유효하다면 우리 국민은 일본에 고급문화만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그 정책조차 유효하지 못해 착각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저 자신을 포함해 우리 국민은 강대국에 대해 저항감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약소국 저개발국의 문화를 경멸하는 못된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이중성을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작은 나라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때 마음의 문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의 국제화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밖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김여수=문화보호주의는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 고유문화를 보존하려는 목표가 있다면 명시적 차원에서 문화보호주의적 정책을 쓰는 것은 결과에 있어서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터 버리면 밀려 들어오는 외국문화에 휩쓸려 전혀 바라지 않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명시적인 측면이나 정책수준에서 어느 정도 보호적인 자세를 갖는 것은 아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상룡=많이 읽히는 책이 결국 금서인데 금서가 풀리면 안 팔립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문화개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적 쇄국에 대한 반동으로 오히려 문화적 식민주의가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화개방은 피할 수 없는 도전입니다. 위험요소가 수반되더라도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김경원=동감입니다. 궁극적으로 국제화는 국제사회의 규범과 관행을 받아들이고 다양한 문화적 전통들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면서 국제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시민을 배양하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어떻게 국제화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궁극적으로 교육이 중요합니다. 교육과정을 통해 국제적 의식을 학생들에게 내면화시켜야 합니다.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고 국제경쟁력 있는 세계시민이 되도록 교육할 수 있을 때 국제화에 성공하게 됩니다.

 ▲김인준=우리 국민이 국제화되고 세계시민으로 성장하게 되면 지역주의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입니다. 지역주의도 벗지 못하면서 어떻게 국제화를 할 수있느냐 하는 말이 있는데 역설적으로 국제화되면서 지역주의도 점차 줄어들 것입니다.

 ▲최상룡=우리 자신의 문화적 쇄국도 강하지만 서구지성사를 보면 유럽인들도 문화적 상대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오랜 전통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양있는 지식인들도 일국문화 중심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국제화는 선진국화라는 위험스런 사고가 있는 상황인 만큼 이른 바 선진국에서 문화를 창조하는 군상들의 자각을 촉구해야 합니다.

 ▲김경원=후진국문화는 경멸하고 선진국문화에 대해서는 저항감을 가지면서도 기가 죽고 그것을 높게 생각하는 속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서구문화도 다른 문화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문화를 창조적으로 받아들인 경우도 있습니다. 피카소는 아프리카미술을 많이 흡수했고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등은 중국문화를 존경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문화에 대해 적극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했습니다.

 우리는 광복이후 국제화를 생각했건 안했건 사실상 엄청난 국제화를 경험해왔습니다. 여행등을 통해 50년전에 비해 국제적 경험의 세계가 엄청나게 넓어졌습니다. 반드시 바람직한 결과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넓은 세계로 한국인들은 뛰고 있습니다.

 ▲최상룡=희망적인 것은 우리 지식인들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자원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중국 구미 일본등의 문화적 교양을 골고루 갖춘 지식인들이 양으로도 많고 질도 높습니다. 문화적 다양성과 관용의 주체라는 인적 자원에서 대한민국이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김경원=지금까지 국제화는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얘기했는데 결국은 밖으로 나감으로써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스스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자기 존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밖에서 자기를 쳐다볼 수 있는 것, 저만치서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한국을 떠나 유럽 미국 동남아 중동등에서 한국을 들여다보면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많이 보이게 됩니다.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이 모두 보입니다.

 ▲최상룡=「자기발견은 자기탈출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자기귀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세계화는 자기발견이다」라는 헤겔의 말이 중요해진 시점입니다.

 ▲김경원=국제화는 결국 자아인식을 한 차원 높이 올리는 과정이며 이는 끊임없이 계속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기록=이재렬·김광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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