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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선언 넘어 82년 첫 종합화 시도/통일방안 명칭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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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선언 넘어 82년 첫 종합화 시도/통일방안 명칭변화

입력
1994.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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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이후 차례 변경… 혼란 여지도/82년/민족화합 민주통일안→89년/한민족 공동체안→93년/3단계 3기조안→94년/한민족… 3단계안 15일 김영삼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이 발표 됨으로써 우리측 통일방안은 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이후 5년동안 3번째로 「문패」가 바뀌게 됐다.

 이홍구부총리는 이번 「공동체 통일방안」이 『과거의 통일방안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 가다듬은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통일방안의 골격은 바꾸지 않고 국민에게 보다 쉽게 명칭이 부각될 수 있도록 상징성을 강화하는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89년), 「3단계3기조 통일방안」(93년),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94년)등 우리측 통일방안의 명칭이 짧은 기간내에 잇달아 바뀜으로써 새로운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73년 6·23선언, 74년 8월15일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등 단편적인 선언·성명등으로 우리측에서는 선교류­후통합이라는 점진적 통일론이 가닥을 잡아왔다. 이같은 단편적인 통일방안은 5공화국들어 82년1월22일 공식적으로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이 천명됨으로써 일단 종합·체계화가 시도됐다. 이 방안은 과거 비정치적 교류를 확대하면 자연스러운 파급효과로 저절로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극적 접근방식을 탈피,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시범협력사업추진등 정치분야의 노력을 가미한 「신기능주의」접근방식으로 적극화한 것으로 노선으로 봐서는 오늘날 통일방안의 기조를 닦았다고 할 수 있다.

 이름부터 다소 어려웠던 이 통일방안에 민족공동체(COMMONWEALTH)개념을 도입, 상징성을 강화하고 통일국가에 이르는 구체적인 중간의 도정까지 명시, 완성된 통일과정을 그려낸 것이 89년9월11일 발표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당시에도 통일원장관이던 이홍구부총리는 통일열기가 사회전반에 고조되고 여소야대의 특이한 정국하에서 4당4색의 입장뿐 아니라 재야·종교계의 의견까지도 최대한 반영한 작품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이 방안은 통일의 중간과정인 남북연합단계에 대해 상세한 개념과 실현방안을 규정했다.

 그러나 통일방안은 새정부 출범후 지난해 7월6일 민주평통 제6기출범식을 통해 3단계3기조 통일방안으로 다시 새 명칭이 붙여졌다. 통일의 과정을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등 3단계로 명시, 공동체개념 대신 「3」이라는 숫자에 상징성을 부여한 것. 그러나 정부입장이 남북연합의 후기과정으로 연방제등의 가능성도 배제치는 않고 있다는 점에서 단계를 3개로 나눈 정당성은 희박했다.

 특히 새 정부는 실천정신으로 민주적 국민합의, 공존공영, 민족복리등 3가지를 신설, 과거 통일방안과의 차별을 시도했으나 이미 지난해말 한완상당시 부총리가 경질되면서 「3단계3기조」중 3기조가 떨어져 나가 「3단계 통일방안」으로 호칭되는등 수명이 1년이 채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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