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파기 「전과」 의식… “신뢰높아진건 사실”/“너무 양보” 불만도… “특별사찰전 수교불가” 미국이 지난 13일 북한과의 제네바 합의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관리들이나 의회 인사들은 이번 합의가 북핵개발 저지를 위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축배를 들기엔 아직 이르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미국의 이같은 신중한 반응은 북한이 과거 수차례에 걸쳐 한국이나 미국과 합의한 사항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전과」가 있는데다가 제네바회담의 주요 쟁점들이 미해결인채 남아있기 때문이다.
북미회담의 양측 수석대표들이 회담 직후 시인했듯이 양국간에는 아직 불신의 벽이 높다. 제네바 회담의 미국측 수석대표인 로버트 갈루치차관보는 북한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이전단계의 회담때보다는 (북한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합의문 준수의사를 구체적 행동으로 보이기 전에는 북미관계의 앞날을 낙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백악관의 한 관리는 『북한이 특별사찰을 받지 않는 한 외교관계 수립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턴행정부의 신중한 태도는 향후 실무협상에 대한 불확실성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북협상에 회의적인 일부 의원들과 공화당 진영을 의식한 것이다.
대북강경론자들은 북핵계획의 포괄적인 동결조치를 명시한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지나친 양보를 하는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합의문에 적힌 사항이 모두 이행된다면 그런대로 진전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북한에 무엇을 주기전에 그들이 의무사항을 먼저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수년동안 그들과 몇차례에 걸쳐 합의를 본 바 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때 북핵시설에 대한 공습론을 펴기도 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공화)도 이번 합의에 『희망적인 구석이 엿보인다』면서도 『북핵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장담할 수가 없는 현상태에서는 추가 회담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무부나 의회에서 감지되는 이같은 조심스런 분위기는 그대로 언론에도 반영되고 있다. 주요 신문과 방송들은 제네바 합의를 사실중심으로 다루면서 북미전문가회담의 앞날에 섣부른 예측을 삼가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한국정부가 조심스런 낙관론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14일자에서 제네바 합의에 대한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의 반응을 나란히 싣고 『미관리들이 이번 협정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자 워싱턴 포스트는 강석주북한측 수석대표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그가 이번 회담을 통해 미국과 보다 많은 신뢰를 쌓았다고 말한 사실을 보도했다. 보스턴 글로브지도 이날 『한국이 조심스런 낙관론속에서 냉정하게 이번 합의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클린턴행정부에 비판적인 워싱턴 타임스는 「호전적인 북한, 핵카드로 도박에서 승리」라는 제목의 서울발 외신을 실었다. 이 기사는 『북한은 미국이 원조를 제공할 때까지 핵개발 계획을 당분간 유보시켜 놓은채 더 이상의 협조를 할 필요가 없게 됐다』며 회의적인 결론을 내렸다.【워싱턴=이상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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