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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넘어 「세계의 시민」되자/최종고(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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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넘어 「세계의 시민」되자/최종고(특별기고)

입력
1994.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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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반세기를 맞는 지금 우리의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국제화이면서도 그만큼 뜻을 모르는 말도 드문 것같다. 국가나 개인이나 국제화의 흐름에 대응하지 못하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공리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같다. 이렇다 할 집중적 연구도, 행동지침도 보이지 않는다. 백년전 개화기에 개국과 개화로 출발한 국제화가 일제 36년의 단절로 이제 반세기를 맞고 있다. 개화기에는 쇄국이냐 개국이냐를 두고 우왕좌왕했지만, 「제2의 개국」을 맞는 지금도 어쩐지 착잡한 망설임이 있는 것같다. UR등 드센 격류속에서 국익계산과 국내정치적 변수로 인한 복잡한 함수관계 때문인지 모른다. 그럴수록 국제화의 추세에 명민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막대한 손해를 안겨주는 것이 지구촌의 역설의 비정이다.

 논자에 따라 국제화를 설명하는 시각과 방법이 다르겠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뜻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국제화는 무엇보다 개방화를 의미한다. UR가 보여주듯 시장도, 농산물도, 지적 소유권도 이제 자국의 보호벽을 넘어 사정없이 개방을 강요받고 있다. 그 파고가 높은 만큼 저항도 컸지만, 이제는 국익이라는 명분만으로는 압력을 면하기 어렵다. 이 격류를 타고 넘기 위해서는 유능한 협상과 외교술이 필요하다. 국제화의 시대에 맞는 실력을 갖춘 외교가와 전략가,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수준에서 국내제도와 법, 인권의 문제도 정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종래의 「내정간섭」이라는 구호만으로는 모면하기 힘들다. 우리가 국제앰네스티를 통해 북한의 인권을 논평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치이다.

 둘째로 국제화는 선진화를 의미한다. 국제경쟁에서는 우수한 상품, 정보, 아이디어만이 승리할 수 있다. 또 경쟁력이 높고 GNP가 높다고 선진국이 아니고 그것을 바르게 분배하는 것이 사회문화의 구조와 수준으로 평가된다. 촌스럽게 간판만 크고 모토와 현수막이 많은 사회는 미성숙의 사회이고, 교통지옥과 소음공해도 후진국의 현상으로 평가된다. 사회복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셋째로 국제화는 인류화를 의미한다. 인류화는 인간화라고도 할 수 있듯이 이제는 끼리끼리 아는 사람만 정답게 살던 패턴에서 인간과 인류로서 함께 연대성을 갖고 살아야 한다. 아프리카 흑인의 굶주림을 방관할 수 없고 동유럽의 전쟁에 무관심할 수 없다. 우리는 각자가 코스모폴리탄이다. 아무리 관광립국을 외쳐도 이러한 국제적 에티켓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당장 외면당하고 만다.

 넷째로 국제화는 정체화(IDENTIFICATION)를 의미한다. 국제무대의 일원이라 하지만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없으면 주체가 될 수 없다. 자신의 고유한 문화의 질을 발전시켜 국제문화의 반열에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자기의 것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될 수 없고, 인간의 합리성과 공동선의 관점에서 옳은 것을 발전시켜 나갈 때 민족적인 것은 곧 국제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정신적 국제고아가 되어서는 아니된다.

 이러한 몇가지 관점에서 우리의 과거와 좌표를 생각해보면 모자랐던 점과 앞으로의 과제가 심각히 의식된다. 해방후 반세기동안 우리는 분단의 아픔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국제화를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으로도 나, 가족, 민족만 생각했지 인류와 문명, 우주와 환경을 생각하는데에는 폭이 못 미쳤다. 많은 시간과 정책을 분단국으로서의 「저자세」외교에 바쳐야만 했고, 어쩌면 통일이 될 때까지는 이런 수고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통일이라는 것 자체가 국제화의 관점에서 보면 역방향으로 꼬여가고 있다. 국제여건이 불리해서 통일이 안된다는 논리는 설득력을 잃어가고, 오히려 남북한국민이 「이상한 민족」으로 스스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창피스럽게 판명되고 있다. 냉전체제의 몰락과 함께 퇴색한 이데올로기의 망령에 사로잡혀 민족갈등이 재현될 전조마저 보인다. 이런 요인 때문에 통일이 불가능해진다면 한민족은 국제화를 배신하는 민족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우리의 국내정치가 세계시민을 놀라게 하는 깜짝쇼의 정치, 도토리 키재기와 아웅다웅 소모정치를 지양하고 보다 폭넓고 격조높은 정치문화를 형성하는 것도 국제화의 요청이다.

 이러한 산적한 문제와 과제 앞에서 결국 이제부터라도 세계시민으로서의 의식을 가꾸어 나가는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으로 믿는다. 무엇보다 남북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분단 50년의 오해와 무지를 극복하고 공영의 지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은 문화의 힘이라 생각한다. 이데올로기도 핵도 아닌, 인류가 가꿔온 세계문화에 한민족의 문화력이 참여하여 공존공영의 길을 모색하는 가운데 「한국의 문제」에도 조금씩 서광이 비칠 것으로 믿는다.<서울대교수·법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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