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지연에 “결렬아니냐” 긴장/수석대표간 비공식접촉후 발표 13일 새벽1시(한국시간 13일 상오 8시)어둠이 짙은 레만호숫가의 북한 대표부 본관앞 마당에 드디어 갈루치와 강석주 두 수석대표가 기자회견을 위해 모습을 나타냈다. 하루 종일 북한대표부 앞길인 플롱종로에 모여앉아 도시락으로 점심과 저녁을 때우고 두사람의 출현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던 2백여명의 내외신 보도진들은 벌떼처럼 이들을 에워쌌다.
두사람의 기자회견 직전, 합의성명이 국문과 영문으로 각각 배포됐다. 서로 먼저 얻으려는 기자들의 몸싸움으로 순간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핸드폰을 이용한 기자들의 기사송고 목소리, TV기자들의 리포트와 조명으로 북한대표부주변은 흥분과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김일성의 사망발표로 중단됐다가 약 한달만에 재개된 북미3단계 고위급회담은 회담개시 8일만인 13일 새벽 극적으로 합의성명을 발표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측은 당초 전문가회담시작 사실을 확인하면서 12일에 전체대표회담을 가진후 이날 저녁까지는 어떤일이 있더라도 회담을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회담장인 북한대표부에는 하오7시가 넘어서도 미대표단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회담이 결렬되는 게 아니냐, 더 연장되는게 아니냐는 등 추측이 난무했다. CNN은 갈루치와의 인터뷰를 통해 회담이 아무런 합의없이 이날 그대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시간 문제는 북한에 있었다. 강석주는 11일 실무자들이 마련한 합의성명 초안에 대한 평양의 최종훈령을 이날 하오 늦게까지 받지 못하고 있었다. 북한측은 회담개시가 늦어질 수밖에 없는 사정을 미국측에 수시로 통보했다. 미정부의 승인을 받은후 북한측반응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갈루치에게 하오7시 북한측으로부터 회담을 갖자는 연락이 왔다. 갈루치등 미대표단6명은 하오 7시43분 북한대표부에 나타났다.
밤 10시 미대표단은 다시 북한대표부를 떠났다. 2시간이 더 지난 12시20분 미대표단 13명 전원이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보도진들이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날 것이라고 확신한때는 바로 이때였다. 북한측은 영내에 기자회견을 위한 마이크를 설치하고 지친 보도진들에게 음료수와 과자를 제공했다.
회담이 마지막순간까지 성패여부를 예측할 수 없게 한 가장 중요한 걸림들은 특별사찰 부문이었다. 미국은 북한의 과거핵의혹을 규명할 유일한 방도인 특별사찰의 수락없이는 경수로를 지원할 수 없다는 점을 회담 첫날부터 강력히 밝혔다.
북한측은 주저했다. 북한은 다만 50 및 2백 흑연감속형 원전건설을 동결하며 방사화학실험실을 폐쇄하겠다고 제안했다.의견접근이 힘들자 갈루치와 강석주 수석대표는 10일 4시간에 걸친 오찬회담을 갖고 일단 공동합의 성명을 작성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평양측은 강석주가 보낸 합의안 초안에 포함된 핵안전조치의 이행 허용 문구를 놓고 주저했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특별사찰허용을 뜻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12일밤 합의안을 채택하라는 훈령이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양측 수석대표간에 비공식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안초안에는 「전면적인 핵안전협정(FULL SCOPE OF SAFEGUARD)의 이행」으로 표현됐으나 발표된 합의안에는 「전면적인」이란 단어가 빠졌다는 후문이다.【제네바=한기봉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