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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지나온 분단세기/길승흠 서울대교수·정치학(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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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지나온 분단세기/길승흠 서울대교수·정치학(특별기고)

입력
1994.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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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불신·대립으로 점철/「폭력장치」동반 남북 병영국가로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북한에 수립된 정권은 남한의 진보주의학자는 물론 최근 주사파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다. 하나는 당시의 북한정권이 「인민」 「민중」편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를 정치이념으로 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나라의 허리가 잘려서는 안된다는 민족주의를 정치이념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당시 남한에 수립된 정권은 「민중」을 대변하는 극좌, 온건좌, 중도, 온건우파세력은 불참하고 오로지 지주세력 부일세력등의 이익을 대변하는 극우파의 이승만한민당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이들은 또한 민족주의에 역행하는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추진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북한은 남한을 「방아쇠 한 발」(ONE TRIGGER)로 붕괴시킬 수 있다고 믿고 6·25남침을 강행하였다. 이 전쟁이 남북한에 미친 인명·재산피해는 차치하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 오늘날까지 남북한 정치체제에 준 영향력이다. 6·25전쟁은 남북한 상호간 불신을 심화시켰고, 폭력장치를 동반하는 「병영국가」를 남북한에 심어놓은 것이다. 6·25전쟁에 있어서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전쟁으로 이룩된 양쪽의 폭력장치가 각기 집권세력들의 권력기반구축, 권력영속화에 전용·남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북한의 김일성은 전쟁이후 전쟁책임을 물어 박헌영등 국내 공산주의세력과 김두봉등 중국 연안파세력을 숙청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에 대한 「우상화」작업을 추진하다가 끝내는 김정일세습체제를 밀고 나아갔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에 부자간의 세습체제가 겹친 것이므로 북한의 정치체제는 과거 소련의 스탈린체제보다 강도가 훨씬 더 높은 전체주의 유일체제가 된 것이다.

 정치가 경제와 사회를 송두리째 지배하는 체제가 된 것이다. 시민·사회단체가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썩혀버리는 체제가 된 것이다. 결과는 경제의 2중적 악화이고 북한의 사회주의가 원래 추구하던 「평등」이 「하향식 평등」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6·25전쟁은 남한에도 큰 위세를 떨쳤다. 전쟁이후 남한의 대북한 불신은 심화되어갔고 이에따라 남한에는 폭력장치를 지배하고 있는 「군출신」정치인들이 출현하였고, 이 폭력장치는 「군출신」정치인들에 의하여 자기의 권력기반 구축 및 권력영속화에 활용된 것이다.

 그러나 남한체제는 북한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남한체제는 「비정치」분야에서는 개인과 기업체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시켜주는 체제라는 것이다. 남한정부는 이 체제를 잘 활용하여 지나간 30년간 세계 제1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룩하였고, 그 결과 인구구조는 서민층이 주류를 이루는 다이아몬드형으로 된 것이다. 중산층이 서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는 정치적 권위주의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남북한간의 이상과 같은 대결체제는 탈냉전시대에 와서 북한의 열세, 남한의 우세로 귀결되었다. 1989∼90년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국가들이 붕괴 내지 공중분해되고, 한국이 소련과 정식 국교를 체결하고 중국과도 관계를 심화시켜 나아가자, 북한은 남한과 1990∼92년에 모두 8차례의 고위급 회담을 가지면서 「비핵화선언」에 서명까지 하고, 유엔 동시가입까지 하면서 핵개발에 전력투구해온 것이다.

 그 결과 북한은 어느덧 「5개」또는 「1∼2개」의 핵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이미 과거에 개발한 핵은 모든 수단을 다 강구하여 보유해가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같다. 94년 8월 현재까지 북한은 중국의 후견을 받고 있지만, 만일 중국의 90세의 등소평이 사거하고 중국이 소련과 같이 붕괴하여 북한에 「힘」이 될 능력을 상실할 때 북한은 완전히 고립무원의 상태로 빠지게 되는데, 북한은 이런 경우를 상정하고 자기의 「과거의 핵」은 어떻게든 사수할 태세이다.

 북한의 김일성은 지난 7월 8일 사거 이전에 미국의 카터대통령을 북한에 초청하고, 「앞으로의 핵」개발은 동결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이 선에서 미국과 관계개선을 한다는 정책을 제시하고 합의를 얻어낸 것이다. 미국의 클린턴행정부는 보스니아 소말리아 아이티등의 정책에 있어서 적정선에서 그치려는 태도를 취해왔는데, 대북한정책에서도 「과거의 핵」은 중시하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이웃 중국, 무라야마총리가 이끄는 일본도 유사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같다. 「비핵화」정책을 고수해온 한국정부의 정책 향배에 관심이 쏠린다.

 이상 분단 50년사를 볼 때 남북한의 과제는 명확해진다. 북한은 「과거」의 핵을 보유함으로써 계속 세계의 불신 속에서 살아가고, 또 프롤레타리아독재와 세습체제가 안고 있는 유일체제를 계속 밀고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태도결정을 해야 할 것같다. 한편 남한도 지나간 반세기동안 견지해온 우파중심만의 대북한정책을 계속 밀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통일과 통일후에 대비하여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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