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비전없어 일부젊은층 김일성추종/이젠 우리사회가 이상주의 제시할때/북과의 과거·현재·미래정립 명확해야 「본질」에 도움 내년은 광복 50년·분단 50년의 해. 해방이 곧바로 분단으로 이어진뒤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우리는 동서냉전의 와중에서 민족상잔의 참혹한 비극을 겪어야 했다. 오늘날에도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은 끊임없이우리의 삶을 속박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무리없는 통일을 이루고 국제화시대에 적응, 도약할 수 있는가. 한국일보는 광복 반세기·분단 반세기의 역사적 매듭을 1년 앞두고 8·15를 맞아 「통일의 조건과 방법」, 「국제화의 길」을 모색하는 특별좌담을 마련했다. 김경원사회과학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특별좌담은 두번으로 나누어 게재된다.【편집자주】
□참석자
◇김여수
▲57세·서울 ▲미하버드대졸 독본대 철학박사 ▲성균관대·서울대철학과교수(현) 서울대철학사상연구소장(현) ▲유네스코총회 한국대표 ▲저서=「인문과학의 새로운 방향」등
◇김경원
▲58세·함남 진남포 ▲서울대 법대중퇴 미 윌리엄스대졸 하버드대 정치학박사 ▲고려대교수 대통령비서실장·주유엔대사·주미대사 ▲사회과학원장(현) ▲저서=「혁명과 국제체제」등
◇최상용
▲52세·경북 경주 ▲서울대 외교학과졸 동경대 법학박사 ▲중앙대·고려대정외과교수(현) 고려대평화연구소장 한국평화연구원장(현) ▲저서=「국제냉전과 국내냉전」등
◇김인준씨
▲46세·경기 화성 ▲서울대 상대2년 수료 ▲미다트머스대졸 미하버드대 경제학박사 ▲서울대 국제경제학과교수(현) ▲금융통화운영위 위원(현) ▲저서=「국제경제론」등
▲김경원=8·15 광복이후 지난 49년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시대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40∼50년대가 대한민국 건국의 시대였다면 60∼70년대는 산업화에 가장 역점을 둔 경제건설의 시대였습니다. 80년대는 정치민주화를 위한 투쟁과 실행의 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민주화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어느 정도 실천된 시기였습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남북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통일을 실현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미·북한간의 핵문제에 관한 협상진전에 따라 북한과 주변국의 관계도 커다란 변화가 예상되고 있지만 북한 내부의 변화에 따른 통일가능성도 큽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도전은 국제화입니다. 통일이 한반도의 특수상황, 민족 내부상황에서 유래되는 도전이라면 국제화는 국제사회 자체 흐름에서 나오는 도전입니다. 이 두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봅시다. 먼저 통일문제와 관련해 오늘의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김여수=어떤 의미에서 지난 50년은 행운의 반세기였습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건국과 유례없는 경제발전, 그리고 민주화를 이룩했습니다. 또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혁명적 결과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를 비혁명적 진화적 방법으로 성취한 것입니다. 그 배경과 이유는 국민의 근면성과 창의성,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타율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찾 을 수 있습니다. 해방과 더불어 타율적으로 주어진 자유민주적 시장경제체제를 잘 학습해 근면성, 진취성과 연결시켜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50년은 더 어렵고 시련과 어려움을 주는 50년이 될 것입니다. 지난 50년동안 타율적으로 주어졌던 나라발전의 기본적 모델과 목표가 더 이상 적실성과 타당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50년동안 지향할 방향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게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입니다. 일부 젊은이들이 아직까지 김일성 유일사상같은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고 방종하는 이유는 사회가 제시하는 비전, 목표가 젊은이들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만일 내년이나 후년에 통일이 된다고 했을 때 통일한국의 지향목표는 있느냐, 대다수 국민들이 마음주고 그 토대위에서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틀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김경원=김교수의 말씀은 피상적이고 낙관적인 환상을 깨워주었습니다. 과거 발전경험의 연속적 연장이 미래라고 생각하기 쉬운 유혹에 빠질 수 있는데 앞으로의 고민은 채택할 수 있는 모델이 기성품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더욱 창조적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최상룡=8·15는 우선 한국현대사의 출발과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는 세계사적 변화의 접점이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해방한국, 민주한국을 거쳐 통일한국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전쟁과 궁핍, 성장, 민주의 시대를 거쳐 통일의 시대를 맞는 시점에서 8·15는 해방의 기쁨을 기념하는 날이면서 동시에 통일한국을 주도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돼야 합니다. 통일이 된다면 통일기념일은 8·15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생소하고 타율적으로 주어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세계사를 주도하는 이념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또 세계사의 문명사적 변화 속에서도 우리는 다행스런 상황에 있습니다. 지금 세계사의 변화는 대안부재상태에서의 변화입니다. 우리가 통일이라는 비교적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입니다.
▲김경원=자유민주주의 또는 다원적 민주주의는 비록 타율적으로 채택한 것이지만 발전을 이룩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모델을 창조하여야 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동시에 다원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논하기 전에 이를 충실히 실현해야 한다는 자성이 필요합니다.
다원적 민주주의모델은 사회구조와 질서의 내용을 변형된 형태로 재구성할 가능성을 허락해주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자기혁신과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수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 가운데 일부가 김일성사상을 추종하는 현상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젊은 세대는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습니다. 둘째로 기본 가정(가정)부터 파산한 사회주의는 본래 종교시대 이후 세속주의시대에서의 엄청난 이상주의입니다. 사회주의가 무너진 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각자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인간은 이에만 만족하지 않고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충동을 갖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어떤 이상주의를 젊은이들에게 제시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김인준=현재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동서 냉전의 붕괴로 과거 정치질서는 깨지고 있습니다. 또 국가중심의 경제에서 범세계화와 지역주의로 요약될 수 있는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통일과 국제화를 함께 추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통일문제를 말씀드리기 전에 북한과의 관계정립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남북관계를 정립하고 그 안에서 문제를 본다면 본질에 대한 접근이 쉬울 것입니다. 통일비용도 통일의 형태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정치적 통일보다 경제적 통일이 기간이나 비용에 있어서 길고 크다는 사실입니다.<7면에 계속>
<6면에서 계속>
◎전쟁아닌 평화적 수단으로/통일의 방법은/무의미한 「흡수논의」콤플렉스만 확대/주도권 이끌 군사력확보가 대명제로/후유증 큰 독일 거울로 우리 정치·경제틀 연구해야
▲김경원=구체적으로 어떤 통일을 예상할 수 있을까요. 또 어떤 형태, 어떤 과정을 예상할 수 있을까요.
▲최상룡=독일, 베트남, 예멘등의 사례를 검토해보면 공통된 점이 전쟁이든 파국이든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통합하는게 현실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전쟁에 의한 가장 전형적인 경우가 베트남이고 독일은 전쟁이 아닌 방법으로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예멘의 경우는 이른바 평화적 교섭에 의한 엉성한 통합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 또한 한 쪽이 다른 한쪽을 통합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망합니다. 차제에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발언이 얼마나 비정치적이고 미숙한 발언인지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흡수콤플렉스를 지닌 한쪽 상대를 두고 흡수하겠다 안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콤플렉스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입니다. 아예 흡수논의 자체를 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둘째로 전쟁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달성해야 한다는 엄청난 명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동족상잔의 처절한 경험이 있고 비록 전쟁이 일거에 문제를 해결해준다 하더라도 엄청난 파장이 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아닌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변형된 독일식 지향이라고 할까요.
다음은 탈냉전기를 맞아 통일의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한다는 명제입니다. 탈냉전기는 군사력과 사상이 해체되는 과정입니다. 힘과 사상의 공백상태에 있는 지금 통일이니셔티브를 위해서는 군사력의 공백에 대한 심각하고 현실적인 고려가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는 주한미군 철수등으로 우리가 원치 않아도 자주국방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오리라 봅니다. 따라서 적절한 수준의 군사력확보가 필요하며 그런 점에서 군사안보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이 중요합니다.
▲김여수=통일된 한국의 이념적 바탕은 넓은 가변성을 가진 민주주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알고 있는 정치제도로서 자유민주주의가 목표와 이상을 실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인지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제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김경원원장께서 언급한 한국적 모델의 재창조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현실에 대한 적응이 될 듯합니다. 현실적 의미에서 이념은 진공상태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관념과 현실의 적절한 변증법적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도·이념적 틀이 진화적인 방법으로 드러나게 하는 주체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노력없이 통일을 서두르면 통일이 되어서도 무이념상태에서 혼란과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김인준=현시점에서 통일속도를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통일은 남북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주위여건에도 영향을 받는 것이므로 통일의 분위기가 성숙되고 기본적 틀을 유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설 경우 통일비용을 감수하고라도 통일을 적극추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기본적인 환경에 적합한 정치제도, 경제적인 틀까지도 심도있게 연구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특히 오랜 준비에도 후유증에 시달리는 독일의 경우를 본다면 어느 한 집단을 통한 일관되고 구체적인 준비가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경원=통일이 실제 어떻게 실행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논리적으로 분단 양 세력중 한편이 붕괴되어 다른 한 편에 흡수되는 경우, 양측 집권세력이 자발적 합의를 이루는 경우등 두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붕괴과정을 군사적 방법에 의한 붕괴와 내부문제로 스스로 붕괴하는 것으로 나눈다면 통일의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됩니다.
우선 군사적 수단에 의한 상대의 붕괴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통일은 민족구성원들이 보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얻기 위한 것이지 삶을 희생해서 추상적 민족주의적 목적을 향해 달음질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붕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김일성이후 체제의 변화가능성은 과거보다 커진 게 사실입니다. 공산국가의 예로 보아도 혁명을 이룩했던 1세대가 무너지면 변화가 오는 것은 확연하므로 현실적 대비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상호합의에 의한 통일은 양측 집권세력이 통일을 위해 권력을 양보할 용의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한국의 경우 집권세력이 기한내 나가게 돼있지만 북한은 체제를 김일성부자의 자산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집권층의 권력에 대한 기본자세가 민주화되지 않는한 합의에 의한 통일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점진적 평화통일이 가능해지려면 북한의 체제가 민주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통일정책도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북한체제 붕괴에 대비한 위기관리측면과 중·장기적 관점에서 북한사회의 민주화를 어떻게 촉진하느냐 하는 측면입니다. 그러나 민주화를 요구하고 설교하고 압력을 가하는 방식, 즉 카터전미대통령식의 대외접근방법은 재고해야 합니다. 그보다 사회 자체가 근대화되어 민주화를 가능케 하는 제반 전제조건들이 성숙될 때 민주화는 가능할 것입니다. 핵문제를 해결한 뒤 북한사회의 전반적 근대화를 촉진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경제협력에서부터 인적인 접촉, 문화적 개방등 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최상룡=평화적 붕괴와 평화적 공존은 모두 좋습니다. 북한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비민주적 상황의 개선을 촉구하는 공세적 접근법과 핵문제가 해결된 뒤 경제협력으로 접근하는 방법등이 있습니다. 북한의 민주화를 통한 평화공존의 장기화 가능성도 있지만 갑작스런 북한체제 붕괴의 현실적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비해 단순한 위기관리 차원을 넘어 통일에 따른 법률정비가 무엇보다도 시급히 필요합니다. 또 경제통합뿐 아니라 문화통합의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냉전으로 왜곡되고 이질화된 문화를 배제하고 통일에 대비한 통일문화의 재창조가 필요합니다.
▲김인준=남북의 타협은 북한붕괴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민주화는 타협으로 나오는 길입니다. 독일의 경우 동·서독간의 타협과 동독의 내부붕괴가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타협하는 과정에서 동독이 붕괴하게 됐고 동시에 붕괴 속에서 타협이 이뤄졌습니다. 그러한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는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북한의 개방화를 위해서는 남북경제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경원=북한이 개방한다면 붕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개방해도 문제, 개방 안해도 문제」라는 것입니다. 북한경제가 개방하지 않는다면 파산한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최상룡=북한의 멸망은 시간문제입니다. 경제적 궁핍 속에서 민심이 돌아선다면 엘리트들도 자기분열을 보일 것입니다.
김경원=맞습니다. 북한의 내부붕괴와 함께 북한의 민주화를 통한 평화적 통일의 가능성에 대해 우리 모두가 대비해야 하겠습니다.【기록=이재렬·김광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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