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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마다 이름을 붙이자(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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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마다 이름을 붙이자(사설)

입력
1994.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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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의 길마다 이름을 붙이자. 국무총리 자문기구인 국제화추진위(위원장 김경원)는 최근 국제화추진노력의 하나로 행정구역별로 각각 다르게 되어있는 지번체계를 고치기위해 정부내에 합동작업반을 운영할 것과 지도만있으면 누구나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도록 큰길에서부터 작은 골목까지 도로명을 부여할것을 아울러 건의했다.

 현재 전국의 지역별 가구지번이 극히 혼란스럽고 길의 이름이 없어 집찾기가 극히 어렵다는 사실은 새삼스런게 아니다.

 동명과 번지만 들고 친구집을 찾아 나섰다고 치자. 길 이름이 없으니 어느 길가인지 알 수가 없고 번지수가 일렬로 줄서 있는 것이 아니라 들쭉날쭉이니 친구의 집을 제대로 찾아낼 수가 없다. 길가다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택시운전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도시의 간선도로에나 겨우 이름이 붙었을 뿐 웬만한 큰길도 무명이니 1개동에 보통 50여개가 넘는 골목길은 말할것도 없다.

 지번만해도 그렇다. 행정당국의 설명은 지금까지 어떠한 원칙이 없이 때로는 도로를 기준으로 하거나 때로는 신축순서를 기준으로 했왔기때문에 지번의 혼란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동의 한번지는 호수만 3백개가 넘는 곳이 있다. 이처럼 수십년동안 관행이 계속되어온 사이에 이제는 지번정리만해도 엄청난 시간과 예산이 들고 주민들 역시 이를 귀찮게 여기고 있어 그대로 외면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골목까지 도로명을 부여하는 문제도 그렇다. 서울시는 지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에 앞서 2백49개 가로명을 일제 정비하면서 36개 신설·연장도로에 대해 새 이름을 붙였고, 수도권 신도시의 경우 새 도로에 이름을 붙였을 뿐 모든 길에 작명을하는 작업은 아직도 생각지 못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다만 91년말 구로구가 각 동에 1개골목씩 새 이름을 달았지만 그 작업 또한 간단치 않았고 공식적이고 영속적인 것이 되지 못했다.

 이제 우리도 많은 국민이 해외여행의 경험을 갖게 되었다. 선진국엘 가면 공항이나 호텔에서 구입한 지도 하나만으로도 주소만 알면 어디나 찾을 수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길 이름이 없으면 지도가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길의 이름이 지도에 적혀있지 않으면 자신의 현위치를 알 수 없다. 지번이 아무리 있어도 그것이 질서정연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가구별 지번의 정리와 아울러 동네의 각 골목마다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번잡하고 방대한 작업이라 해서 언제까지 후진국의 뒷골목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이름이 없는 무명로는 가로등이 없는 무명로와 같다. 가로등 없는 길이 캄캄하듯이 이름없는 길은 캄캄한 밤길이나 마찬가지다. 골목까지 등이 켜져 있듯이 골목까지 이름이 있어야 한다.

 해방50주년을 앞둔 지금, 정부는 이번의 국제화추진위건의를 신중히 받아들여 새로운 도시행정의 면모를 보여줌은 물론 우리의 국제화의식수준 향상에 기여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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