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외교 「제네바」서 첫 평가/“남북관계 그대로” 우리측 부담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 합의는 한반도 주변정세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고있다. 한반도분단 반세기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해왔던 미국과 북한이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에 합의함으로써 남북한과 주변국과의 관계는 대대적인 변혁을 앞두게됐다. 동시에 한반도 긴장의 뇌관이었던 북한핵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음으로써 이같은 변혁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합의는 무엇보다 미국과 북한의 입장변화를 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은 핵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아래 제재보다는 적극적인 대화방식을 택했다. 북한도 미국의 제의를 선뜻 수용해 실리외교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국제적 인정및 경제난 극복을 통한 체제유지에 비중을 두는 김정일외교가 처음 대외적으로 평가받은 셈이다.
반면 북방외교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외교」를 펴왔던 우리로서는 반대의 상황을 맞게됐다. 우선 우리가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한반도문제의 당사자해결 원칙의 일각이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한미간에는 긴밀한 협의가 진행되고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핵문제는 단순히 한반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고려돼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북관계개선및 핵문제논의는 북한의 주장대로 남한이 배제된 채 진행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반도 주변정세는 냉전시대 짜여진 한―미―북간의 절대우호, 절대적대 관계의 틀을 벗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의 전례는 일본에도 적용될 공산이 크다. 일본은 미국과는 다른 국익을 갖고 있지만 북한과의 관계개선에서는 미국의 전례를 원용하며 과거보다 한층 편한 상황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다른 우방과 북한의 관계도 상당부분 변화를 겪게될 전망이다.
우리측도 이같은 변화를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 아니다. 80년대 후반 북방외교를 추진하면서 이미 「대결외교」를 지양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공표해왔다. 다만 남북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입장표명은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남북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 우리외교의 고민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측이 미북간의 제네바 합의에 일단 환영을 표시하는 것은 북한핵문제의 해결기반이 확보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문제 해결의 시작』이라는 한승주외무장관의 논평대로 우리의 입장은 아직 신중할 수 밖에 없다. 북한의 속마음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 우려의 시각을 불식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북한은 실제로 핵과거를 밝힐 수 있는 특별사찰에 대해서는 미국과 다른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있다. 시간벌기이거나 최소한 핵카드의 여지를 남겨두려는 속셈으로 관측된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반도 주변정세가 한 발 앞서 변화하는 것은 우리측에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물론 미북관계와 남북관계는 상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놓칠 경우 장기적으로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제네바합의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우리정부의 역할은 어느때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남북관계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북한핵과거의 투명성확보, 경수로전환 지원금의 배분및 성격, 남북대화진전유도 등에 대해 우리정부가 목소리를 어느 정도 낼 수 있느냐에 한반도문제의 당사자 해결여부가 달려있다고도 볼 수 있다.【정광철기자】
◇북미회담 관련일지
▲85년12월12일=북한,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
▲92년4월10일=북한, IAEA 핵안전협정 비준
▲93년3월12일=북한, NPT 탈퇴선언
▲5월11일=안보리, 대북 결의안(제8백25호) 채택
▲6월2∼11일=북미 제1단계 고위급회담(뉴욕) 북한 NPT 탈퇴유보 발표
▲7월14∼19일=북미 제2단계 고위급회담(제네바)
▲11월22∼23일=김영삼―클린턴대통령, 워싱턴서 북한핵 공동보조강화 합의
▲12월29일=미북, 뉴욕 추가접촉서 핵사찰 수용 합의
▲94년1월7일=북한―IAEA 사찰협상 시작
▲1월25일=북한―IAEA 협상 결렬
▲2월15일=IAEA, 북한핵사찰 수용 발표
▲3월3일=미국, 팀스피리트 중단, 3단계회담 발표
▲3월1∼15일=IAEA, 북한 핵 사찰
▲3월31일=유엔안보리, 북한의 추가사찰 수락촉구 의장성명 채택
▲5월30일=안보리,핵연료봉 추후 계측가능조치 촉구 의장성명 채택
▲6월10일=IAEA, 북한제재결의안 채택
▲6월13일=북한, IAEA 탈퇴 선언
▲6월15∼18일=카터전미대통령, 북한 방문
▲6월18일=북한, 남북정상회담 제의, 한국 수락
▲7월8일=북한 김일성 사망,제네바에서 3단계회담 하루만에 중단
▲8월5∼12일=북미 3단계회담 1차회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