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로 광복 49주년이 된다. 그러나 일본어의 잔재는 우리 말과 의식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고, 근래 오히려 새 일본어가 들어오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우리말을 다듬고 가꿔가야 할 시기에 일본말이 무분별하게 쓰이는 혼탁한 현실에 대한 수필가 윤모촌씨의 글을 싣는다.【편집자주】 광복 반세기가 다가오는 때를 맞아, 일제의 사슬에서 풀린 일들이 되새겨진다. 우선 말과 글을 되찾았다. 그러나 병들었던 말과 글을 진정 되찾은 것인가 의아해진다.
오늘의 한국어를 놓고 어디까지 금을 그어 일본어에 물든 것을 가리느냐에 대해선 아무도 쉽게 말할 수가 없다. 고유한 말이나 선인들이 쓰던 한자어가 일어식으로 바뀌지 않은 것이 없는 까닭이다. 「논의 상의 의론」이 장사꾼이 흥정한다는 뜻의 상담―상담이 됐고, 노자가 여비따위로 변한 것등이 그런 예다.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은 이제 별로 의미가 없다.
그러나 한가지 다른 민족의 고유어, 민속어만은 함부로 들여올 일이 아니다. 그 나라 민족만의 말이기 때문이다.
이즈막 한국의 실용어에는 일어가 너무도 분별없이 끼여들어 퍼져가고 있다. 과거의 찌꺼기가 아니라 새로 들여다가 퍼뜨려 놓는다. 「도토리 키재기」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따위의 저들의 속담까지 우리 것인양 자랑삼아 쓴다.
일인들만의 민속어 「제」가 아무데나 붙어 쓰이는 것도 웃음거리의 하나다. 미술전이면 어떻고, 음악회면 어때서 가뜩이나 오염된 말에, 새롭게 비럭질을 해다 쓴다는 것인지. 「보인다·된다」가 「보여진다·되어진다」따위의 일본어법으로 굳어져간다. 「확실히 믿는다」면 믿는다지 「믿어의심치 않는다」는 우리나라 어법 어디에 근거해서 쓰는 말인지. 「민초」가 잘못 쓰이는 말임을 독자들이 지적했다. 그렇다. 이 말은 일인이 만들어낸 말이다. 한자의 종주국 중국의 전거에도 없고, 우리의 문헌에도 없다한다.
이 말이 몇해전 모 신문지면에 난데없이 나타났을 때, 필자는 조금 얼떨떨했다. 일제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 같아서이다. 젊은층은 신선한 말, 기발한 단어로 감동했을 것이다.
태평양 전쟁이 치열했을 때, 일본 본토인은 7천만, 조선 인구는 3천만이었다. 그래서 저들은 「황공하옵께도 천황폐하께옵서 1억의 민초(다미구사)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나발을 불었다. 그 나발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다.
이런 「민초」(다미구사)가 이 땅에 되살아난 이후 유식한 사람들이 전용물처럼 앞을 다투어 쓴다.
강우량이 강수량이 되어 전파를 타기도 한다. 하늘에서 물이 내린다는 뜻이다. 이것도 기발한 말이다. 영어의 기상용어를 충실히 번역해서 쓰는 말이라 한다지만, 물이란 지하나 지상에 있는 상태에서나 쓰는 말이다. 자국어보다도 외국어에 충실한 말들, 식자우환이라더니 너무 배워도 탈이고 너무 알아도 병이다.
이즈막에 일인식 이름을 단 각계인사가 대중매체를 자주 탄다. 착잡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 구 총독부 건물을 헐어낸다지만, 그것이 진정 한국인의 가슴에서 헐려나가는 것이라면 다행한 일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자국어를 지키는 자세, 광복 49주년을 맞으면서 그 사람들의 정신을 먼 곳에서 감회 깊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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