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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죽기살기”경쟁… 숱한 상처만(광복 분단 50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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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죽기살기”경쟁… 숱한 상처만(광복 분단 50년:1)

입력
1994.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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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1인독재·과도군사력 “질곡”/반세기 「소모의 역사」 극복은 민족이 공감하는 방식의 통일뿐 8·15는 한국 현대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소용돌이치는 상징적인 날이다. 그 날은 한반도가 일제의 굴레로부터 벗어난 「질곡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점령국인 미소에 의해 분단되는 「비극의 시작」이며,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미래의 당위」이기도 하다. 혼재하는 의미속에서 이 땅을 딛고 사는 우리에게 8·15는 광복보다는 비극과 당위의 이미지로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금년이 분단 49년, 내년이 50년이 되지만 아직도 통일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일 것이다. 그렇다고 미래마저 비관적이지는 않다. 분단의 질곡속에서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주의를 일궈나가는 우리의 역량으로 볼 때 통일은 예상보다 빨리 현실화될 수도 있다. 한국일보는 「광복50년·분단50년」의 역사적인 시점에서 과거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이를 토대로 통일한국의 미래를 조망해보고자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별로 분단50년을 총괄적으로 정리하는 연중시리즈를 진행한다.【편집자주】

 1945년 8월15일 한반도가 해방의 기쁨으로 들떠있을 때,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맥아더태평양연합군사령관에게 트루먼미대통령의 급전이 전달됐다. 「일반명령 제1호」로 명명된 이 지시는 『38선 이남의 일본군 항복은 미국이, 이북은 소련군이 접수토록 하라』는 내용을 담고있었다.

 한반도의 분단은 이렇게 시작됐다. 분단은 우리민족에게 숱한 상처를 안긴 비극이었지만, 그 시작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라는 단순한 「군사적 편의주의」에서 비롯됐다.

 2차대전중 미소양국은 카이로(43·11) 얄타(45·2) 포츠담(45·7)회담에서 전후문제를 논의하면서 『한반도를 적당한 시기(IN DUE COURSE)에 독립시킨다』고 잠정적으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미소간의 냉전이 심해지면서 양국의 패권주의는 한반도에서도 맞부딪쳐 분단은 점차 고정화돼 갔다. 이어 모스크바3상회담(45·12), 신탁통치안, 미소공동위원회구성, 한국문제의 유엔이관 등의 노력이 있었지만, 그 이면에 엄존하는 미소대립으로 분단해소는 불가능했다.

 이런 사실에 기초해 대부분의 학자들은 한반도의 분단을 「냉전의 희생물」이라고 규정한다. 이장희교수(외국어대)처럼 『미소등 국제사회는 우리의 분단을 해소할 법적 책임이 있다』고 적극적인 주장을 펴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당시 남북한의 정치지도자들도 찬·반탁논쟁, 좌·우익투쟁, 정쟁에 매몰돼 분단의 고정화에 일조했었다. 분단의 근본원인이 냉전이라고 할지라도, 그 책임이 결국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그래서 분단책임 논쟁보다는 분단50년의 의미와 교훈을 되짚고 통일방안을 진지하게 준비하는게 더욱 절실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분단50년의 의미를 김학준교수(단국대 이사장)는 「소모의 역사」로 규정한다. 김교수는 『냉전체제하에서 남북한은 서로 상대에게 먹히지 않고 우위에 서려고 50년 동안 소모적인 경쟁을 해왔다』고 말했다. 남북한이 단순히 체제우월성만을 위해 엄청난 국가재원을 투입했고, 그것은 낭비라는 혹평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와는 달리 미래학자인 허먼 칸처럼 『남북대립이 경쟁을 유발, 상호발전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 경쟁은 선의보다는 악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소모적인 측면이 훨씬 많았다. 예를 들면 남북한의 해외공관은 모두 2백18개(남1백41·북77)로 세계 최대이며, 이는 치열한 외교전의 산물이다. 또한 휴전선에 밀집된 남북군사력은 적정선을 넘어선지 오래다. 한국문제 전문가인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반도 면적과 비슷한 미네소타주의 인구가 2백만명에 불과한데 남북한의 무장병력이 2백만명』이라고 과도한 군사력을 지적했다.

 외형적인 소모성 외에도 분단은 정치체제와 국민의식에도 심대한 피해를 입혀왔다. 이장희교수는 『남북한 권위주의정권의 생존은 분단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말했다. 남한의 유신정권 군사쿠데타, 북한의 김일성1인체제가 나름대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상호위협 때문이었다는 분석이다.

 최상룡교수(고려대)는 「자유의식의 실종」을 분단의 해악으로 제시했다. 최교수는 『냉전시대에 자유는 양쪽으로부터 천대받아 한때 자유이념의 공동화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의식의 피해는 이밖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천만 이산가족의 한, 전쟁의 공포, 적대감등은 양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분단의 해악들이다.

 우리민족에게 소모와 비정상을 강요해 온 분단50년은 역설적으로 통일의 당위성을 웅변해주고 있다. 분단을 해소한다면, 소모적으로 분산됐던 민족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있다는 가설을 성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분단해소는 민족적·당위적 과제이기도 하지만 점차 현실적인 개념으로 다가오고 있다. 북한이 여전히 강고한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세계사의 흐름은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개방을 불가피한 요소로 형성시키고 있다.

 소련등 공산주의 블록의 붕괴, 국제사회의 경제·기술패권주의, 21세기의 정보화시대 등은 남북으로 하여금 더이상 냉전의 잔재위에 머무를 수 없도록 하고있다. 특히 국제적 소외와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분단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없게 돼 있다.

 그렇다고 저절로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이 오는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북한핵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 긴장의 농도가 짙어질 수도 있다. 또 장기적으로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이 불가피하고 처벌과 청산이 뒤따른다는 전망이 부각된다면, 북한의 지배층은 위험스런 모험을 감행할 수도 있다. 때문에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대하고, 우리내부의 공감대를 어떻게 형성해나가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지난해 한국일보의 연중시리즈 「대전환기·한국의 선택」을 이끌었던 김경원박사는 『역사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오직 역사의 패자만이 변화를 두려워한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시대를 한 발 앞서가는 진취성과 적극성만이 분단50년의 질곡을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이영성기자】

◎남북한 국력비교/70년대부터 군사력제외 남한이 앞서/GNP 15대… 경제총력 배우세

 분단 49년동안 벌어진 남북간의 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는 남한의 절대적인 우위로 판가름났다. 50, 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의 국력이 다소 우세했으나 70년대로 넘어오면서 남한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 북한과의 격차를 갈수록 크게 벌리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74년을 고비로 남한이 급속히 성장, 북한을 월등히 앞서고 있다. 남한의 국민총생산은 13.5억달러(53년)에서 3천2백87억달러(93년)로 2백43배가 증가했으나 북한은 같은 기간동안 4.4억달러에서 2백5억달러로 46배의 증가에 그쳤다. 국민총생산의 남북대비는 15대1을 넘어서고 있다.

 1인당 GNP의 경우 북한이 73년까지는 남한보다 앞섰으나 74년부터 남한이 역전시켜 지금에 와서는 8대1(7천4백66달러:9백4달러)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자료:통일원, 한국은행)

 다른 경제지표의 경우(93년 기준)도 남한이 무역총액 1천6백60억달러: 26억달러, 발전량1천4백44: 2백21, 조선건조 3백38만톤: 5만톤, 쌀생산 4백75만톤: 1백31만톤 등으로 앞서있다. 최근 들어 북한은 공산권 붕괴로 러시아의 지원이 중단되면서 한층 곤란해져 4년연속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군사적으로는 북한이 양적 측면에서 줄곧 우리를 앞섰다. 6·25당시 북한의 군사력은 병력 19만7천5백명, 전차2백42대·장갑차54대, 전투함30척, 공군전술기2백11대 등으로 병력10만4천6백명, 전차0대·장갑차 27대, 전투함2척, 공군지원기24대에 불과한 우리측을 크게 압도했다. (자료:한국전쟁사) 현재의 남·북한군사력을 비교하면 병력65만5천명: 1백3만명, 전차1천8백대: 3천8백대, 전투함 1백90척: 4백34척, 잠수함1척: 26척, 전술기5백20대: 8백50대 등으로 북한이 우위에 있다. (자료:93∼94국방백서)

 통일원산하 민족통일연구원은 남한의 경제총력이 북한보다 6배정도 우세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93년도 남북한 국력추세비교연구」에서 『남한의 국력은 갈수록 상승곡선을 그려 북한과의 격차를 더 벌릴 것이다. 남한이 유일하게 열세인 군사력도 멀지않은 장래에 역전시킬 것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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