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과열조짐·과잉통화 복병/공산품값·서비스료 등도 “들먹”/추석·연말 「두차례 힘겨운 고비」 남아 하반기 물가에 비상등이 켜졌다.
지난달말 현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작년말대비 5.2%. 연말까지 아직 다섯달이나 남았지만 이미 올해 억제목표선(6%)에 0.8%포인트차로 바짝 근접해 있다. 물가를 잡으려면 수요(소비)와 공급(생산비용)의 안정이 절실한데 지금 추세라면 「0.8%포인트의 마지노선유지」는 어려울 전망이다. 추석과 연말등 가파른 물가고비도 두차례나 넘어야 한다. 정부는 『6%억제방침은 지금도 불변』이라며 정책수단과 행정력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안팎에서 밀려오는 인플레압력을 견뎌내기엔 역부족인것 같다.
◆수요:하반기물가안정에 최대의 복병은 경기의 과열조짐이다. 경기가 좋아지면 정부건 민간이건 소비수요가 창출되고 지출이 늘어 물가가 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경기의 내용에 따라 상승률은 달라질 수 있다. 3저호황기(86∼88년)엔 13%대의 고도성장에도 불구, 인플레압력을 밖으로 배출하는 수출주도형경기로 물가를 5%대에서 잡았지만 90∼91년의 활황기엔 내수, 특히 과소비와 부동산과열이 경기를 이끌어 결국 물가상승률은 두자리수에 근접하고 말았다.
지금을 과열경기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상반기 경제성장률 8.9%(KDI추정)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비록 부동산안정위에 수출·제조업이 경기회복을 주도, 내용은 건실한 편이지만 ▲외식·오락·해외여행비지출이 급증하고 ▲가전 승용차등이 갈수록 대형화하며 ▲먹고 즐기기 위해 가계대출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내수과열과 과소비가능성을 배제할 수만은 없다.
풀린 돈이 너무 많은 것도 쓰고 싶은 심리를 부추기는 물가교란요인이다. 실명제이후 1년새 시중에 풀린 돈은 약 17조원. 총통화량의 14%에 해당하는 액수다. 통화량증가는 통상 4∼6분기후 물가에 반영되는 점을 감안하면 실명제이후 풀린 과잉통화의 인플레여파는 지금부터 본격화 될것이다.
정부는 하반기 물가안정을 위해 과열경기를 조기차단, 재정지출을 극도로 자제하고 통화관리의 고삐도 바짝 조이는 총수요억제(긴축)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모처럼 살아나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어 긴축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최근 지준관리강화로 실세금리가 폭등, 기업들의 생산활동이 위축기미를 보이자 금세 돈줄을 다소 풀어줬던 것은 정부가 경기와 물가사이에 처한 정책적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공급:7월의 「가뭄물가」는 이달 들어 날씨와 함께 해소됐지만 공산품·서비스요금등의 비용상승압력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국제원자재가격급등은 「신3저장기화」의 예상을 뒤엎은 뜻밖의 복병이다. 유가는 작년말 배럴당 14.50달러에서 7월말에 20.30달러로, 기타 원자재가격도 이 기간중에 27%나 급등했다. 가격상승분을 관세로 흡수해도 원자재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로선 비용상승압력을 그대로 떠안아야 한다.
원자재값변화가 제품가격을 통해 물가에 반영되는데는 3∼6개월이 걸린다. 실제로 공산품도매물가는 7월말까지 1.9%가 올라 지난해 연간상승률(1.5%)을 웃돌았고 원자재가격의 인플레압력은 하반기에 더욱 커질 것이다. 임금협상을 마친 기업들의 평균임금인상률은 7%로 작년(5%)보다 높은 수준이며 땅값도 투기억제법안들의 후퇴속에 서서히 꿈틀거리고 있다.
비용상승에 의한 공급부문 인플레압력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행정력을 총동원했다. 값이 들먹거리는 품목은 경제단체나 업계를 통해 가격환원을 유도하고 학원비 외식비등 소비수요증대속에 틈만 있으면 오르는 서비스요금의 동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공공요금인상은 아예 뒤로 미뤘다. 물가안정을 위해 수출을 희생하면서까지 원화절상을 용인하고 있다.
하지만 한번 오른 물가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소비자들의 저항도 잠시뿐, 금세 고물가에 익숙해진다. 옷가게나 식당에서 야금야금 오르는 서민물가에까지 행정력이 미칠 수는 없고 설령 가격동결조치가 성공한다 해도 인플레압력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연기될 뿐이다. 고비용구조척결과 생산성향상이 없이는 매년 반복되는 고물가의 악순환고리를 끊을 수가 없다.【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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