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상오 제주공항에 착륙하려다가 폭발한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탑승자 1백60명이 무사히 탈출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의 드라마였다. 사고기록을 보면 지난 일인데도 숨이 막힌다. A300―600R 기종인 그 여객기가 착륙하다 돌풍을 만나 활주로를 벗어난 것이 11시23분, 24분엔 왼쪽 주날개부분이 공항 보안시설과 충돌하여 엔진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25분 사고안내 방송, 26분 비상탈출용 미끄럼대로 탈출 시작, 35분 탈출완료, 40분 비행기 폭발…. 그 숨막히는 17분동안 승객들은 『질서, 질서!』를 외치며 승무원들의 안내로 신속하게 불타는 비행기에서 벗어났다.
그들이 위기속에서 『질서, 질서』를 외친 것은 매우 슬기로웠다고 생각되면서 한편 흥미롭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국인의 가장 심각한 취약점이 무질서라고 느끼고 있었고, 그같은 상황에서 무질서란 곧 죽음을 가져오리라는 사실을 벼락치듯 본능적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질서, 질서』를 선창했고, 곧 합창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질서」라는 줄을 잡고 살아났다. 남을 제치고라도 빨리 탈출해야 한다는 공포심을 억누르고, 그들은 차근차근 차례를 지켰다. 승무원들은 침착하게 탈출을 유도했고, 기내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음을 확인한 마지막 승무원이 탈출한지 이삼분후 비행기는 폭발했다. 연기와 불꽃이 치솟는 사고 비행기에서 1백60명이 십여분만에 탈출한 기적의 열쇠는 질서였다.
이제 우리는 질서를 큰소리로 외치지 않고도 저마다 묵묵히 질서를 지킬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줄서는 수준에서 한단계 올라간 질서의식을 키워야 한다. 이번 사고도 따지고 보면 무질서한 기업풍토가 그 원인이다. 대한항공은 제주도가 태풍 더그의 영향권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무리한 운항과 착륙을 감행했다. 피서철을 맞아 항공사들이 무리하게 증편을 함으로써 정비가 소홀해지고, 승무원들도 지쳐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무리를 무릅쓰고 수입을 올리려는 것은 기업의 생리지만, 안전수칙을 외면하여 이미 수차례 사고를 냈던 항공사들이 아직도 승객의 생명을 걸고 모험을 한다는 것은 용서할수 없는 일이다. 67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고가 불과 1년전 일이 아닌가.
사고발생후 제주공항의 항공기 운항이 전면중단되자 예약승객 1만여명이 몰려들어 공항청사는 밤새도록 대혼잡을 빚었는데, 일부 승객들의 격렬한 항의와 농성은 유감스러웠다. 운항중단의 원인이 사고라면, 질서를 지키면서 사고수습을 기다리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어야 한다. 어느새 우리는 무질서뿐 아니라 항의와 농성까지 생활화하고 있는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질서는 공동사회의 생명이다.이번 사고에서 다시 확인한 그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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