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벡 「통조림…」·함순 「굶주림」·모디아노 「청춘시절」/경제공황시대 배경… 휴머니즘 부각「통조림…」/특별한 줄거리 없이 인간감정 잘 묘사「굶주림」/추리기법·투명한 문체 마치 영상처럼「청춘시절」최근 세계적 명성을 지닌 작가의 소설들이 잇달아 번역되었다. 존 스타인벡의 「통조림 공장마을」과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청춘시절」이 한꺼번에 나와 여름철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스타인벡(1902∼1968년·미국)과 함순(1859∼1952년·노르웨이)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거장이고 모디아노(49)도 프랑스 정통소설의 맥을 잇는 전후세대 최대작가의 한명으로 평가돼왔다. 이 소설들도 인간본질과 휴머니즘을 중심으로 작가의 문제의식이 고전처럼 배어있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타인벡 특유의 사회비평적 분위기가 짙게 깔린 「통조림공장 마을」(문학세계사간)은 금주령과 경제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한 가난하지만 순박한 미국 서민들 이야기다. 소설에는 종종 희극적 인물들이 등장해서 「통조림공장 마을」을 엉뚱하고 예측불허의 공간으로 이끌어 간다.
나름대로 치밀하고 그럴듯하다고 내놓는 아이디어들까지 경쟁사회의 풍토와는 어울리지 않는데, 그것이 오히려 휴머니즘을 부각시킨다고 볼 수 있다.개구리파티가 준비되고 시작도 하기 전에 사고가 나서 온 마을에 개구리가 득실거리는 장면 등을 통해서 작가는 어수룩하지만 또한 아름다운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함순은 「땅의 혜택」으로 노벨상을 탔지만 「굶주림」(도서출판 창 간)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소설은 특별한 사건이나 줄거리가 없이 허기진 인간의 감정과 정신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은 공인받지 못한 작가이다. 그는 경찰과 여자를 만날 때마다 지식인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논리와 명분으로 자신의 굶주림을 위장한다. 배가 고프다는 생리적 현상과 왜곡된 자존심 사이에서 자아가 둘로 분열되는 과정을 치밀하게 쫓는 것이다. 「통조림공장 마을」과 「굶주림」은 전에도 번역된 적이 있으나 절판된 상태였다.
모디아노의 「청춘시절」은 81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추리기법을 도입하고 있는 이 소설은 사건해결과 밝혀지는 범인 대신 주인공의 인간적 또는 사회적 정체성이 드러나게 한다. 루이와 오딜부부가 총각·처녀 시절을 회상하는 액자소설 형식을 취했는데 친부확인불능이라는 특기사항으로 기록된 아버지, 밤무대의 가수였다는 어머니 등 사회에서 뿌리 뽑힌 인물들이 이들 부부의 삶의 실마리요 단서다.
무공훈장을 받았다고도 하고 언론에 살인자라고도 보도된 정체불명의 사업자, 불길한 운명을 상징하듯 간단없이 나타나는 금발의 뚱뚱한 형사 등 등장인물들은 루이와 오딜의 청춘시절을 수놓은 그림들이다.
등장인물의 모호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추리기법과 투명한 문체로 소설 전체를 영상처럼 끌어나갔다.【김병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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