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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위협하는 민족주의/이그나텐코 이타르 타스통신사장(해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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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위협하는 민족주의/이그나텐코 이타르 타스통신사장(해외칼럼)

입력
1994.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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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민주세력엔 인근 벨로루시에서 일어나는 현 상황이 악몽같이 느껴진다. 벨로루시에는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사회주의 세력의 설욕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알렉산드르 루카센코(40)가 벨로루시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것은 구소련의 장래를 걱정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농업관료출신으로 지난 90년 벨로루시 최고회의(의회)에 진출한 그는 유일하게 구소련의 해체 협정인준에 반대했다.

 그의 처세술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소련대통령의 등장무렵부터 유별났다. 그는 당시 공산주의자에 대한 비판에 앞장선 개혁 선봉장으로 고르바초프의 신임을 받았지만 소련붕괴 후에는 벨로루시의 강력한 민족주의자로 돌변했다.

 일부 러시아정치가들은 루카센코를 극단적인 러시아민족주의자인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와 비슷한 인물로 판단하고 있다. 전형적인 벨로루시인인 그는 『나는 좌익도 우익도 아니다. 나는 단지 국민과 함께 있을 뿐이다』며 대중적 인기에 집착하고 있다.

 루카센코의 대통령 당선에 따른 파장은 벨로루시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의 민족주의 노선이 주변의 정황과 맞물려 CIS의 블록화를 앞당기는 촉매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의 출현으로 구소련의 중앙아시아권이 긴장하고 있다. 회교권통합작업을 서두르고 있는 이들 공화국은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등 양대 슬라브세력의 권력변화가 자신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카자흐, 우즈베크, 키르기스등 중앙아시아 3개 공화국은 최근 알마아타회담을 통해 통합움직임을 본격화했다. 이같은 통합움직임은 당초 경제적인 고려에서 출발했지만 각국 대통령과 총리로 구성된 최고위급 「동맹 평의회」가 구성됨으로써 정치적 통합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실제로 우즈베크의 이스람 카리모프대통령은 『이제 (구소련 공화국들은) 무기력에서 탈피해 확실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민족계열 지도자를 맞이한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가 새로운 슬라브통합체로 새출발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레오니드 쿠츠마대통령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간의 이른바 슬라브민족의 통합을 지지하고 있다.

 러시아정부도 호의적이다.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총리는 8월중 모스크바에서 개최될 CIS정상회담에서 유라시안 동맹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슬라브권, 중앙아시아권, 나아가 유라시안권등 연방붕괴 이후 구소련에서 블록화가 현실로 나타날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는 「통합의 길」로 발걸음을 모을 수 있을까. 루카센코 벨로루시대통령과 쿠츠마 우크라이나대통령은 성격이 서로 다르지만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대통령직 당선 시점과 도전자라는 불리한 위치를 민족주의 성향으로 극복하고 권좌에 올랐다는 점이 특히 그러하다.

 양국 최고지도자의 결심에 따라서는 통합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려되는 것은 민주주의세력을 가장한 민족주의자들의 통합움직임이 러시아 민주화 과정에 미칠 영향이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아직 진통을 겪고 있는 민주화운동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민주화가 민족을 앞세운 통합움직임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으며 몇몇 지도자의 정치적 야망이 CIS의 재통일에 커다란 장벽으로 등장했다.

 러시아의 민주세력이 추진중인 범민주세력 결집을 위한 8월 대회 구상은 민주주의라는 이념아래 많은 지지자들을 끌어모을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성과를 거둘지는 의심스럽다. 민족주의자들이 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나서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이같은 회의는 지도자만을 찬양하고 결론없이 끝나는 구소련의 당대회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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