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통과 당시체육청소년부 강력 요청”/“개인참여 막아 부정개입 여지 없었다”/6공 권력핵심 은근히 겨냥 재일교포 박영수씨가 경윤·경정사업진출을 위해 우리나라 정·관계에 거액의 로비자금을 제공했다는 주장이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박씨의 주장은 노태우전대통령 시절인 89년8월부터 대선직전인 92년10월까지 50억엔의 로비자금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돈을 주었는지는 밝히지않고 있어 그가 자금도피의혹을 피하기위해 둘러댔을 가능성도 있지만 정치권은 또한번 벌집 쑤신듯 요란하다.
여야 할것 없이 『문제의 경륜·경정법이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개인의 사업참여를 봉쇄하는 방향으로 결정된 것으로 보아 대국회차원의 로비는 없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야당은 『로비가 있었다면 체육청소년부등 정부쪽이 대상이었을 것』이라며 박철언전체육청소년부장관등을 겨냥하고 있다.
민자당은 그같은 거액의 돈이 정치권에 뿌려졌다는 주장에 대해 별로 신빙성을 두지않고 있다. 문정수사무총장은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며 『사실관계가 어떤지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당시 국회등에서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던 사안인만큼 국회의원을 상대로 한 로비는 없었던 것같다』고 말했다. 13대 국회에서 교육체육청소년위에 속했던 한 의원은 『처음부터 의원들은 사행심조장의 우려가 있다는 것 때문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면서 『결국 사업주체를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지방자치단체로 제약, 개인사업자의 참여를 막는 방향으로 결정됐는데 로비가 있었다면 그렇게 됐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당시 체육청소년부에서 올림픽시설의 활용이란 이유를 들어 법통과를 강력히 요청해왔다』며 『그 바람에 소속상임위 의원들이 일본 유럽등으로 시찰까지 갔다왔다』고 화살을 돌렸다.
민주당도 정치권의 로비관련설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당시 교육체육청소년위 위원장인 조세형의원은 『우리당은 이 법을 반대했었다』며 『체육청소년부측의 간청도 있고 당시에는 청소년기본법이 더큰 쟁점이었기 때문에 청소년기본법시행을 대선이후로 늦추는 조건으로 두 법안을 묶어 처리했다』고 말했다. 조의원은 또 『정부가 법안을 제출한뒤 의원들사이에 사행심조장등 반대의견이 많았던 것 외에는 자세히 기억조차 나지않는데 무슨 정치자금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로비가 이루어졌다면 정책결정권을 가진 권력의 핵심인사에 쏠렸을 것』이라며 현재 구속중인 박철언전의원을 의심하는 눈치이다. 민주당의원들은 『그렇게 많은 돈이 쓰였다면 6공당시의 권력구조로 보아 누구를 대상으로 했겠느냐』며 『박전체육청소년부장관이 법 통과를 강력히 주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노태우전대통령측은 박씨가 6공시절 집중적인 로비를 펼쳤다는 주장에 대해 『파산한 일개 빠찡꼬업자의 주장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노전대통령이 당시 이 문제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박씨가 친척을 통해 전두환전대통령쪽에도 줄을 댔다는 주장에 대해 전전대통령측은 『89년에서 92년 사이라면 5공인사들은 산에 있었거나 감옥에 있었다』며 『당시 6공정권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던 상황에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로비를 생각할수 없었을 것』이라고 일축했다.【신재민기자】
◎경륜·경정법 어떻게 입법됐나/89년초 첫거론 반대심해 2년여 지연/박철언 장관시절 민자당 단독 처리
우리에게는 낯선 경륜·경정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올림픽(88년9∼10월)직후인 89년초였다. 정부는 이를 추진하면서『막대한 돈을 들여 건설한 미사리 조정경기장과 올림픽 벨로드롬등 유휴시설을 활용하자』는 취지를 내세웠다. 노태우전대통령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검토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사행심조장, 교육 및 주거환경파괴등을 이유로한 반대가 워낙 거세 경륜·경정법은 91년 9월에 국회에 상정돼 석달뒤인 12월에야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 법은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로 민자당단독으로 통과됐다.
이법은 김집장관(88·12∼90·3)때 거론되기 시작해 정동성장관(90·3∼90·12)을 거쳐 6공 실세인 박철언장관(90·12∼91·12)때서야 비로소 통과된 것이다.
국회의 경우 문공위와 교청위가 담당해왔고 위원장은 정대철(89)―김원기(90∼91·9)―조세형의원(91·9∼91·12)이었다. 실무역할을 한 간사는 함종한(민정) 박석무(평민) 강삼재(민주) 김인곤의원(공화)등이었고 91년초 3당합당 이후에는 함의원과 박의원이 간사를 계속 맡았다.
이법은 정부입법으로 정부는 『경륜·경정사업의 공정한 시행과 원활한 보급을 통해 국민들에게 건전한 여가를 제공하고 국민체육진흥, 청소년건전교육, 자전거·모터보트의 기금조성, 지방재정확충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입법취지를 설명했다.당시 야당은 청소년기본법이 몇달 후 치러질 14대 총선(92·3)과 대선(92·12)에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경륜·경정법에 대해서는 크게 반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있다.【이영성기자】
◎경륜로비세 박영수는 누구/일본회사 담보로 융자 한국진출시도/91년 경륜 개인운영 무산후 모습감춰
경륜·경정사업을 둘러싼 거액로비사건으로 물의를 빚고있는 재일동포 박영수씨(71·일본명 나카야마 야스지·오사카거주)는 오사카한인상공회나 민단과도 교류없이 지내 일본의 교포사회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다.
오사카민단관계자에 의하면 박씨는 그다지 재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평소 전경환전새마을본부장과 친한 관계라는 것을 과시하고 다녔으며 82년께 빠찡꼬점을 5곳이나 증설하면서 『한국에서 자금을 대주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박씨가 경영해온 일본흥업의 본사는 오사카시내 중심지에서도 지하철역인근인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담보가치만해도 거품경기 당시 3백억엔 이상으로 평가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씨는 이 회사를 담보로 여러 은행에서 거액을 융자받아 빠찡꼬점 확장과 경륜·경정사업 참여를 위한 로비활동에 나섰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이 돈으로 89년께 한국에도 진출,국내에서 조그마한 쇠고기 가공공장을 세웠다가 실패했다.이때 그는 새로 출범한 프로사이클연맹의 초대회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경륜사업을 도입하려고 했다.그러나 체육부가 이를 개인이 아닌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맡겨 91년12월 경륜·경정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회장직을 사임하고 이후에는 한국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함께 박씨는 일본에서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거품경기당시 부동산값이 천정부지로 뛸 때 이를 담보로 얻어쓴 은행빚이 거품이 빠지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 빠찡꼬점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결국 견디다 못한 박씨가 지난 3월 파산선언을 했을 때 밝혀진 은행차입금이 6개은행의 큰것만 합쳐도 2백42억엔에 달했다.
당시 채권단들이 자금사용 장부제출을 요구했으나 박씨는 『폭력단관계자가 가져갔다』며 경리장부를 제출하지 않았다.결국 채권단은 박씨를 비롯한 경리관계자들을 불러 차입금의 사용처를 조사한 결과 박씨 본인으로부터 한국으로의 부정송금과 로비활동에 관한 증언을 듣게 된 것.
현재 35개 법인과 개인으로 구성돼있는 채권단은 박씨가 한국에서 로비자금 50억엔이외에도 50억엔가량을 사용으로 더 쓴 것으로 보고있다.채권단은 일본흥업의 자금이 5백만엔밖에 남지 않았기때문에 보유부동산을 경매처분해 변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도쿄=이창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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