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7백만 3개종족… 83년부터 내전 올 초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는 일급 호텔 세 곳에서 동시에 시한폭탄이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스리랑카 소수민족인 타밀족의 분리독립을 외치는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게릴라들의 소행이었다. 불과 수명의 부상자가 생겨났을 뿐이지만 이 사건은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가 이끄는 스리랑카정부에 큰 충격을 주었다.
내전이 본격화된지 11년만에 처음으로 타밀분리주의 테러분자들이 외국인들이 체류하는 일급호텔을 공격목표로 삼았던 까닭이다. 외국인에 대한 폭탄테러를 통해 전달하려는 타밀분리주의 세력의 메시지는 명료했다. 스리랑카의 정국불안 상황을 주지시킴으로써 외국인들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한편 위크레메싱게 정권의 경제발전 의지를 꺾어보겠다는 의도였다.
때문에 스리랑카정부는 이후 콜롬보일원에 비상경계상태를 계속 유지하며 특히 외국인에 대한 신변보호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인구 1천7백만명의 스리랑카는 다수종족인 싱할리족(75% 불교) 타밀족(18% 힌두교) 무어족(7% 회교)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간의 갈등과 반목은 영국 식민지배 시절에는 수면아래서 내연했으나 48년 스리랑카가 독립되면서 불거지기 시작, 급기야는 지난 80년대 초반부터 무력분쟁으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다수민족인 싱할리족이 정권을 잡은 83년7월부터 종족언어인 싱할리어를 유일한 국어로 채택한데 이어 타밀분리주의 운동을 불법화하자 일부 타밀 강경세력이 무력대항을 선언한 것이다.
타밀족의 밀집거주지역인 스리랑카의 북동부지역을 거점으로 한 타밀 해방운동조직은 이후 30개의 반군세력으로 불어났고 그중 최대 세력이 LTTE조직이다. LTTE는 이후 싱할리족이 주도하는 스리랑카정부를 상대로 엄청난 「피의 투쟁」을 벌였다. 85년 5월에는 싱할리족이 운집한 시내버스 정류장에 자동소총을 난사, 1백43명의 시민이 사살되는 대참극을 벌였고 지난해 5월에는 라나싱헤 프레마다사 스리랑카대통령을 폭탄테러로 암살했다.
이에 따라 스리랑카정부군은 지난 해 6월부터 대대적인 타밀게릴라 소탕작전에 들어갔다. LTTE의 최대 거점인 자프나 반도에 대한 봉쇄작전은 아직도 진행중이며 현재도 스리랑카 북동부 전역에선 치열한 전투가 진행중이다. 그러나 게릴라들의 조직적인 저항이 거센데다 정부군의 후방지원 및 무기공급에도 문제점이 노출되고있어 내전의 장기화는 불가피한 형국이다.
스리랑카 정부발표에 의하면 83년부터 지금까지 11년동안 양측에서 발생한 사망자만 1만9천명에 달한다. 현재 자프나 반도내에선 LTTE가 중심이 돼 민간행정기구 치안 법원들을 운영하는 등 준정부형태의 자치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LTTE는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10대초반의 타밀족 소년들을 전장에 내몰고 있어 동족으로부터도 공포의 대상이 되고있다.
『LTTE는 자살특공대를 휘하조직에 두고 무고한 민간인마저 무참히 학살하고 있습니다. 국제인권단체에서도 LTTE를 소수인 타밀 민족을 위한 대표조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고 스리랑카 정부관계자는 강조했다.
현재 수도 콜롬보시의 치안은 비교적 안정돼있다. 스리랑카 경찰국과 보안군이 주요 관공서 및 호텔등에 대한 경계태세를 유지함에 따라 외국인들의 활동 또한 자유로운 상황이다. 그러나 내년에 있을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자신들의 주장을 선전하는 좋은 기회로 여기고 있는 타밀족이 언제 테러활동에 나설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콜롬보=강진순기자】
◎말리가와 「불치사원」/석가모니 치아사리 보존 “불심의 성전”
스리랑카 콜롬보시에서 동북쪽으로 1백15㎞ 떨어진 캔디시는 싱할리왕조의 마지막 수도였던 고도이다.
해발 5백m에 위치, 날씨가 해안보다도 선선한 이 도시는 싱할리왕조의 마지막 왕인 스리 위크라마 라자싱하가 1807년에 만든 캔디호와 주변 산 중턱에 들어선 주택들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캔디호 바로 옆에 있는 달라다 말리가와사원은 석가모니의 치아 한개가 보존돼 있는 불교 유적지다. BC 543년 석가모니 열반시 거둬졌던 치아 한개를 AD 4세기께 인도에 갔던 스리랑카의 한 공주가 머리카락속에 숨겨 가져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불교를 숭앙하는 스리랑카인들에게는 이 치아는 매우 소중한 보물이다. 원래 스리랑카 북부지역을 통치하던 아누라다하푸라왕조가 보관했으나 1283년 스리랑카를 침략한 인도군에 빼앗겼다가 파라크라마바후 3세가 되찾아와 이 사원에 모셔졌다.
말리가와사원에 들어가려면 외국인이건 내국인이건 맨발이어야 한다. 반바지나 치마를 입어선 안된다. 사원 한가운데의 탑속에 보관되어 있는 석가모니의 치아는 석가탄신일등 대규모 불교행사때 일반에 공개된다. 치아가 보존된 탑 뒤편 본찰안에는 석가모니의 탄생에서 열반까지, 그리고 치아가 스리랑카에 오기까지의 전과정을 담은 벽화가 장식돼 있다.
석가모니가 세차례나 방문했던 스리랑카 사람들은 말리가와사원을 성전이나 다름없이 여기고 있다.【캔디=황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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