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낮 기온이 섭씨 38.2도를 기록한 지난달 23일은 대서와 중복이 겹친 날이었다. 24절기중 더위가 제일 심한 절기인 대서는 양력 7월23일께부터 입추 전날까지 약 15일간을 가리키는데, 옛날에는 이 기간을 3후로 나누어 제3후에 해당하는 8월3일께부터 6∼7일 사이에는 무더위 끝에 큰 비가 내리는 때로 알고 농사에 대비했다. 반면에 중복은 음력의 일진 계산법인 십간십이지에 따라 하지후 네번째 「경」일로 정해진다. 그러니 양력과 음력으로 각각 연중 가장 더운 절기를 나타내는 대서와 중복의 겹침은 흔한 일이 아니다. 만세역을 뒤져 보면 대략 19∼21년 간격으로 두번씩 겹치도록 돼 있음을 알 수 있다. 52년과 54년 7월23일, 73년과 75년 7월23일이 그랬고 올해의 다음은 96년 7월22일이 겹치는 날이다.
지난달 23일은 마침 일진이 경술이었는데, 이처럼 더위를 뜻하는 「서」 「복」 「경」자가 모두 모인 날에 개의 날임을 가리키는 「술」자가 함께 붙어 있으니, 이날 목숨이 결딴 난 수많은 누렁이들의 운명은 미리 그렇게 되기로 예정돼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개의 해(갑술)인 올해가 하필이면 「한국 방문의 해」로 정해져 연초부터 개고기를 먹어서는 안되네, 되네, 시끄러웠던 것도 심상찮은 일이었다.
중국의 등소평은 오는 22일로 만 90세가 된다. 얼마전 측근이 밝힌 그의 「양생법」을 보면 『생활태도가 낙관적이고 식후에 반드시 산책을 하며, 브리지게임으로 뇌의 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수영을 자주 한다. 음식은 채소를 많이 먹고 식사 때 반주로 미주(쌀로 담근 술)를 한잔씩 마신다』고 돼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가 강장식으로 개고기를 아주 좋아해서 지방순시 때는 개를 몇마리씩 끌고 다니며 구팽탕을 만들어 먹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이 고발한 그의 부패행적 문건에 그렇게 기록돼 있다.
김일성 역시 개고기를 끔찍하게 좋아해서 주석궁을 방문하는 외부인사에게 특별히 개고기요리 대접하기를 즐겼던 것으로 평양을 다녀 온 사람들은 전하고 있다. 그가 죽은 후 연변지역에서 유일하게 김일성 빈소를 차려 놓고 공식으로 조문을 받은 곳이 개고기 식당이었다는 것은 희극적이다.
4천만 한민족을 6·25의 초열지옥으로 몰아넣었던 김일성은 오히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82년이 넘게 장수하다가, 북한의 발표대로라면, 큰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한 셈이다. 김일성의 영악함이 초인적이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한국인의 민족성이 그의 악행을 응징하지 못할만큼 어리석기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순전히 개고기 덕분이었을까.<편집부국장>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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