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취급속 연명… 치떨려/조속석방 꿈에서도 기도/85년 함께입북86년 혼자탈출 92년 귀순 『오로지 나의 잘못으로 지옥같은 수용소에서 짐승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을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이 하루 빨리 풀려나기를 꿈속에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보고서에서 북한 요덕정치범수용소에 부인 신숙자씨(51)와 딸 혜원(17) 규원양(14)등 가족이 수용돼 있는 사실이 밝혀진 귀순 월북자 오길남씨(52)는 처자를 사지에 몰아 넣은 어리석음을 몇번이고 자책했다.
오씨는 85년 독일에서 가족과 함께 입북했다가 혼자 덴마크로 망명, 92년 귀순한 뒤 평양근교 아파트에 살던 가족들이 자신의 망명 후 곧장 요덕수용소로 끌려 갔다는 소식을 귀순자 안혁씨를 통해 들었다. 특히 아내가 수용소 생활을 견디다 못해 두 딸을 껴안은 채 집에 불을 질러 3차례나 자살을 기도했다는 소식에 지금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는 귀국후 국제적십자사와 국제사면위등에 편지를 보내 가족들의 구조를 간절히 호소했다. 북한측은 지난 2월 국제 펜클럽을 통해『아내와 가족들은 평양에서 간호사생활을 하며 편안히 살고 있다』는 제네바주재대사 리철 명의의 회답을 보내 왔다.
그러나 오씨는 『북한이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체제라는 것을 느껴 탈출했는데 탈출자 가족을 편안히 살게 둘 리가 있겠느냐』며『간악한 거짓말에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오씨는 서울대 독문과를 나와 독일 브레멘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현지에서 반정부활동을 하다 북한공작원에게 포섭돼 간호사인 부인과 딸들을 데리고 월북했다.
그는 『경제학 교수로 일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북으로 갔으나 북한의 대남위장공작기구 「한민전」의 흑색방송 「구국의 소리」와 「민중의 메아리」에서 부인과 함께 방송요원으로 일할 것을 강요당했다. 86년 11월 한국유학생 포섭지령을 받고 유럽에서 활동중 덴마크정부에 망명을 요청, 북한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오씨는 『남한 대학생들이 흑색선전방송을 듣고 주사파가 돼 북한을 따르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라며『유럽의 친북단체들을 통해 대학생들이 팩시밀리로 지령을 받거나 직접 찾아와 지시를 받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오씨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아파트에서 조카와 함께 살고 있다.【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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