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자 비민주」분위기 재확인/“실체인정후 대책 강구” 입모아 신민당의 현경자후보 3만5천4백40표,민자당의 정창화후보 1만6천8백20표. 대구 수성갑에서 실시된 8·2보궐선거의 이같은 결과를 지켜 본 민자당인사들은 두번 놀라고 충격받았다.
약세를 인정하면서도 막판까지 한가닥 기대를 버리지 않았던 정후보가 박철언전의원의 명예회복을 내건 현후보에게 끝내 패배한 것이 첫번째의 작은 충격이었다면 보다 큰 놀라움은 2배가 넘는 표차에서 비롯됐다. 현후보가 아무리 대구의 자존심을 자극하고 이른바 「TK정서」를 호소하더라도 박전의원의 「분신」역에 머무르는 이상 득표력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던 예상이 가차없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이러자 『대구에서 비록 지더라도 체면은 유지되는 근소한 표차가 될 것』을 장담하며 『TK정서가 존재하는게 아니라 눈물에 대한 동정이 있을 뿐』이라고 말해 왔던 주요당직자들은 3일 일제히 입을 닫았다. 동정여론이라는 잣대 하나만으로 이 표차를 설명하기란 사실상 억지에 가까웠던 까닭이다.
특히 지난해 대구 동을 보선 패배에 이은 이번 결과는 최소한 「반민자 비민주」의 지역정서가 일시적이 아님을 재차 확인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굳이 「TK정서」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을지 모르나 『현 정부하에서 대구·경북지역이 뭔지 모르게 소외되고 있다』는 불만이 집단정서화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번 선거를 지원했던 의원들과 실무관계자들은 『경주패배는 대부분 공천잘못 탓이지만 대구에서는 누가 나왔어도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이제야말로 현 여권이 TK정서의 실체를 인정하고 근원을 따져보는등 본격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TK정서」는 영호남의 지역감정보다 더욱 배타적인 성격을 띠어 나가고 있다』며 『여권이 이를 외면한다면 내년 지자제선거이후 심각한 국면을 맞게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요컨대 현후보를 지지한 적극적인 표가 많았다기보다 민자당을 외면한 표들이 자연스레 현후보로 쏠렸던 분위기가 시사하는 바를 심각히 받아들여야 TK정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30년권력을 낳은 대구·경북지역의 정치적 구심력을 겨냥해 이를 업으려는 제3의 정치세력이 출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만큼 민자당이 서둘러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TK정서를 누가 전세냈느냐』는등의 표현으로 줄곧 비판적 입장을 취해 온 민주계 당직자들도 이번 선거결과를 두고 적잖은 고민에 빠져 있다. 물론 이들은 표면적으로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다 보니 구정권에서 세도가였던 몇몇 인사가 걸러진 것뿐이지 딱히 대구·경북이 서운하게 생각할 사안이 있었느냐』고 반문하며 「TK대책」이란 말이 오히려 우습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새 정부출범 이후 실시된 몇번의 보선이나 TK의원들이 전하는 현지여론이 시사하는 바를 더이상 과소평가할 수 없음을 이들도 서서히 인정하는 눈치이다. 이런 상태라면 지자제선거후 영호남의 권력기반이 갈라지는데다 여권의 전통적 기반인 영남지역마저 남북으로 분할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보선은 민자당에 충격을 던지면서 한편으로 그동안 『TK정서가 있느냐 없느냐』에 머물렀던 논쟁을 『어떻게 TK정서를 안을 것이냐』는 문제로 옮기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이유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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