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가 늦게나마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립무원으로 신음하고 있는 북한의 억압받는 이들은 이제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든든한 세계의 친구들을 갖게 되었다. 국제사면위는 남한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남한은 60년대에서 80년대초까지 국제사면위가 특별히 주목하는 인권탄압국의 하나였다. 그들이 해마다 발간하는 인권보고서에 한국의 탄압사례들이 폭로될 때마다 우리는 수치심과 기대가 뒤얽힌 복잡한 감정을 달래야 했다.
국제사면위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승호마을」 실태는 새삼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사면위가 확인한 정치범 58명의 이름은 그들이 단지 문서상의 피해자가 아니고, 이름과 가족과 삶의 목표를 가졌던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란 사실을 생생하게 일깨워 주었다.
고상문씨(46)의 경우야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부모와 신혼의 아내, 갓낳은 딸을 둔 행복한 가장으로 우리 옆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수도여고 교사로 재직중 노르웨이로 유학을 떠났다가 79년 오슬로에서 납북됐다. 그는 여권을 잃어버리고 우리 대사관을 찾다가 북한 대사관에 잘못 들어갔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는 15년만에 북한의 강제수용소에 갇힌 「죄수」의 명단으로 그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우리가 분단을 증오하는 것은 분단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을 파괴했는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고씨는 수없는 희생자중 한 사람이다. 27살에 남편을 빼앗기고 한살짜리 딸을 키우며 홀로 살아온 아내 조복희씨(42)는 『그동안 수신자 주소가 없는 편지를 수없이 썼다』고 고백했다. 그는 「월북자 가족」이라는 의심까지 견디며 불면증과 환청으로 여러 차례 입원해야 하는 사실상의 환자로 살아왔다.
이제 남북관계는 반세기에 걸친 적대관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분단으로 파괴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치유하는 인도주의적인 노력이 그 첫걸음이 돼야 한다. 남한이 조건없이 이인모노인을 보냈듯이 북한도 고상문씨등 납치해간 사람들을 돌려 보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과거를 잊고, 신뢰 속에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국제사면위에 부탁하고 싶은것은 지난 시대에 남한의 인권탄압을 감시했듯이 북한을 감시해 달라는 것이다. 북한이 인권문제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것을 더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 북한은 이제 핵문제 뿐 아니라 인권문제로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은 자신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를 분단을 치유하는 인도주의 실현으로 보여줘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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