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들어 북한을 탈출하여 자유를 찾아 우리에게 귀순해 오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는 현상은 매우 주목할 일이다. 과거에도 간간이 북으로부터 귀순해온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최근의 양상은 여러가지 면에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면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 수가 전에 볼 수 없을 만큼 급격하게 증가한 점이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금년 1월부터 7월까지 사이에 귀순자가 벌써 26명이나 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뿐만아니라 이전의 귀순자들은 대개 성분과 신분이 북한의 권력구조 상층부와는 거리가 먼 군인 또는 근로자들이 주류를 이루었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북한의 최고위층의 친인척들이 잇달아 귀순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출신성분과 직책으로 보아 북한사회에서 아무 어려움없이 생활을 유지하는 특권층에 속하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흔히 귀순자들이 겪어본 고되고 힘든 노동도, 배고픔도 경험하지 않은 채 북한 체제 속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지위에 있다. 이런 특수신분의 사람들이 가족을 북쪽에 놓아둔 채 귀순한다는 것은 전에 볼 수 없는 일이다.
최근에 일어난 이런 현상은 북한 사회내부에 심상찮은 변화가 진행되고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북한주민들이 식량과 에너지의 부족에 시달리면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또 엄격하게 통제된 사회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극도로 억압되고 있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위와같이 알려진 사실을 토대로 북한의 상당수 주민들이 내심 불만을 간직하고 있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사실이외에 북한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하여 우리는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은 것 같다. 북한 내부에서 무엇인가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으며 특히 김일성 사망후 북한의 권력구조에 어떤 변동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확보는 우리 국가의 긴요한 과제이다. 정확한 정보의 수집과 분석이 없이는 효과적인 대북정책을 펴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급변하는 국내외의 정세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려면 정보관리능력이 다른 나라에 앞서야 하는 때이다. 바야흐로 정보화시대에 접어든 현재의 시점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욱 필요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몇가지 사례를 보면 우리 정보기관의 정보관리능력에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존을 직접 위협하는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대하여 너무나 정보가 어두운 것 같다. 북한이 수년전부터 핵재처리시설을 가동하면서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그들이 보유한 플루토늄의 양이 얼마나 되며 이것이 핵무기로 실용화단계에 있는지 여부는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또 김일성의 사망사실을 34시간이 지나도록 모르고 있다가 북측의 뉴스발표로 비로소 알게된 것이나, 김일성 사망후 북한의 권력구조에 어떤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지를 신속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등은 국민을 불안케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어느 귀순자의 회견에서 튀어나온 「핵폭탄 5개 보유」발언은 진위에 대한 사실확인이 안된 채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실확인과 여과없이 공표된 위 발언으로 말미암아 한미간에 긴밀하게 맺어져야할 북핵 공조체제에 불협화의 틈을 보인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결국 이와같은 일련의 상황은 우리의 정보관리체제의 취약점을 드러낸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통제된 북한 사회의 성격상 북한에 관한 정보수집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은 수긍한다. 하지만 안기부를 비롯한 여러 갈래의 우리 정보기관들은 막대한 예산과 많은 인력을 보유하면서 정보관리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업무수행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상당한 배려가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았다.
현재의 제도와 예산이 대북정보수집과 분석에 걸림돌이 된다면 이를 시정하여서라도 우리의 정보관리능력을 한층 높여야 한다. 지피지기면 항상 승리한다는 원칙은 이미 2천5백년 전부터 인류가 터득해온 역사적 진실이다. 다만 이 경우 과거 권위주의 시대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정보기관을 사병화한 폐습은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정보기관이 대북정보수집과 해외정보수집 기능이 약화된 데에는 바로 이와같은 정권의 사병화기능에 치중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이제 치열하게 전개될 국제경쟁시대와 북한의 변화에 대응하여 항상 한발 앞서 나가기 위하여 정보관리능력을 강화하는 과제를 다같이 생각할 때라고 믿는다.<대한변협회장>대한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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