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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떼·뗏목 뒤편엔 「이념유적」 가득(두만강: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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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떼·뗏목 뒤편엔 「이념유적」 가득(두만강:6)

입력
1994.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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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은 잿빛탄광촌… 육진의 땅 회령 「김정숙도시」로 중류로 접어들면서 강은 진경산수의 그림이 된다. 산이 높아 골이 깊고, 치솟은 벼랑사이로 거센 물살이 소용돌이친다. 잠자코 귀를 기울이노라면 으르렁거리는 급류에 대한 두려움도, 조잘거리는 냇물에 대한 정겨움도 결국 마음 속에 있음을 갈파한 연암의 열하일기를 이해할 만하다.

 굽이치는 물길에 여러 물상들이 스치며 그림의 구도는 바뀌어 갔다. 먼저 양떼의 출현으로 강의 표정은 풀어졌다. 강가에서 풀 뜯는 양을 어루만지던 양치기청년은 권태로움을 겨냥해 물수제비를 뜬다. 줄지어 동그라미가 퍼져가는 평화로움도 잠시, 총을 멘 경비병이 나타나자 풍경은 잿빛으로 굳어졌다. 그림속의 양치기사내는 멈춘 시간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순간의 그림속 평화를 현실로 연결시켜주는 것은 건너편 회령땅에 해방전부터 호주에서 수입한 면양의 방목지가 흩어져 있다는 안내인의 말뿐이다.

 백금수력발전소를 지나면서는 좀체 만나기 힘들다는 뗏목을 3개나 보았다. 두만강에서 뗏목을 볼 수 있는 곳은 무산상류, 백금건너편 송학리에서 유선에 이르는 구간등 두 군데뿐이다. 58년에 건설된 두만강 유일의 발전소인 백금발전소가 물길을 가로 막았기 때문이다.

 급류를 타는 뗏목은 장쾌한 원시의 힘을 지닌다. 서너길이 넘는 거목을 묶어 선수는 좁게, 선미는 넓게 엮은 뗏목에 네 명의 뗏목공이 버티고 섰다. 삿대로 물살을 걷어낼 때마다 부서지는 포말에 무지개가 돋는다. 뗏목에 시선을 박고 강을 따라 가다가 이켠 기슭에 좌초한 두 개의 뗏목을 만났다. 10여명이 삿대를 곧추 세우고 뗏목을 끌어 내리려고 안간힘이다. 잠시 쉬는 틈에 담배를 건네며 말을 붙였지만 서로 눈치만 살필 뿐 묵묵부답이다. 뗏목공은 마음만 먹으면 국경을 넘을 수 있어 기술보다 사상이 좋아야 한다는 안내인의 귀띔이 그들의 대답을 대신했다.

 뗏목은 멀지 않은 탄광촌 유선에서 멎는다. 일꾼들은 종착지에서 기슭으로 끌어 올린 뗏목을 해체한다. 이제 나무들은 인근 제재창이나 가구공장으로 옮겨져 인간의 삶으로 편입되리라. 수북이 쌓인 나무더미 뒤로 펼쳐진 유선마을은 전반적인 무채색조에도 불구하고 생기가 느껴진다. 생활이 환히 들여다 보이는 지척인 탓도 있지만 두만강변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눈에 뛰는 곳이기 때문이다. 석탄과 버력더미 옆으로 탄광막사가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똑같은 집들이 빼곡히 들어찬 탄광촌이 보인다. 놀이에 정신이 팔린 아이들이나 강변을 거니는 처녀들의 싱그러운 웃음은 보을천이 돌아 나오는 유선을 「신선이 노닐만한 절경」은 아니라도 사람사는 마을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고개 하나를 넘어서면 회령이다. 남쪽에서 뻗어 내린 산맥의 줄기가 용틀임하듯 시가지를 휘감고 능선 앞뒤로 회령천과 팔을천이 흐르는 회령은 수려한 지세다. 사월 초파일 전후 북쪽끝 학포리까지 꽃놀이기차가 다니고 농번기를 앞둔 농민들이 마을단위로 원족을 떠나던 곳. 회령을 떠나온 실향민들이 인근 백천사등으로 들놀이를 나섰던 것이 바로 이즈음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처녀작으로 꼽는 중편 「두만강」에서 어린 주인공의 눈으로 아스라한 기억을 들추는 작가 최인훈(58)의 유년시절도 이곳에 묻혀 있다.

 역전을 중심으로 늘어선 펄프공장, 제재창등 공장건물과 곧게 뻗은 길 사이로 쇠락한 집들. 삼합 뒷산의 취락정에서 바라보는 회령시가지는 세월의 더께가 내려 앉은 채 생경한 이념의 유적들이 두서없이 가득하다. 김일성의 본처 김정숙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생가가 성역화되어 사적관이 들어서고 강가의 나루터에도 이름이 붙었다. 「성지순례」를 나선 북한학생들이 꼭 들러야 할 곳중 하나다. 김종서장군이 개척한 육진의 하나로 북방경략의 중심지였던 변경의 고도 회령은 우상화의 한켠을 지탱하는 김정숙의 도시가 돼있었다.<특별취재반 권주훈부장대우(사진부) 이준희기자(사회부) 이재열기자(기획취재부)>

◎회령/미인과 영화의 고향/「북녀」의 본고장 왕비·궁녀 다수 배출/춘사 나운규·윤삼육감독 등 이곳 출신

 회령을 얘기할 때 뺄 수 없는 것은 미인과 영화다. 이 두 가지는 실향민들이 회령의 아름다움을 추억하면서 가장 먼저 꺼내는 자랑거리다.

 남남북여의 북여는 대체로 회령과 강계출신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회령미인은 화류계 인물이 많은 강계와는 격이 다르다고 회령사람들은 주장한다. 예로부터 왕비와 궁녀를 많이 배출해 왔으며 회령출신에는 기생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지금의 북한에서도 「회령북녀」의 신화는 유효한 듯하다. 우선 김일성의 뒤를 이은 김정일의 외가와 처가가 모두 이곳이다. 김일성의 본처 김정숙, 김정일이 73년에 세번째로 결혼한 부인 김혜숙이 회령출신이니 김일성왕가의 국모를 내리 배출한 셈이다. 요즘도 북한의 고위관리들은 여자를 구하러 회령에 자주 들른다고 한다. 큰 도시 호텔, 식당의 복무원에서부터 권력상층부에 닿아 있는 기쁨조에 이르기까지 회령여인들은 인기라는 얘기였다.

 우리 영화사도 회령출신을 제외하면 온전할 수 없다. 「아리랑」 「풍운아」 「벙어리 삼룡이」 「사랑을 찾아서」등 걸작을 남긴 춘사 나운규, 춘사의 친구면서 영화인으로 예총회장을 지낸 윤봉춘, 「복지만리」등을 만든 전창근등 전설적 인물들이 많다. 이들의 2세들도 선대를 잇고 있다. 춘사의 장남 나봉한씨는 영화감독으로 활약중이며 최근 「살어리랏다」로 국제무대에서 호평받은 작가 겸 감독 윤삼육, 연극배우 윤소정은 윤봉춘의 자녀이다.

 김정일이 영화광이라는 사실도 우연치고는 기이하다. 모계로 영화인의 고향 회령에 피가 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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