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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포드/탄생100주년 LA서기념영화제(박흥진의 할리우드통신: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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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포드/탄생100주년 LA서기념영화제(박흥진의 할리우드통신:63)

입력
1994.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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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 서부영화 한자리에/명작 137편 남긴 전설적 명감독/「분노의 포도」 「역마차」 등 88편 재상영 올해는 미영화사에 서부영화장르를 정립시킨 할리우드의 전설적 장인 존 포드(사진)가 태어난지 1백년째를 맞는 해다. LA에서는 지금 이를 기념하기 위해 「존 포드의 세기」라는 이름의 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오는 9월30까지 계속될 영화제에는 그가 전생애를 통해 감독한 1백37편의 영화중 88편을 선정해 상영한다.

 존 포드는 1895년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아일랜드이민의 아들로 태어나 1973년 78세로 사망했다. 진군하는 기마대처럼 지칠줄 모르고 창작활동을 했던 포드는 「밀고자」(1935년) 「분노의 포도」(40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41년) 및 「아일랜드의 연풍」(52년)등으로 모두 4차례나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고 2차대전의 전투를 담은 「미드웨이전투」와 「12월7일」로 2개의 아카데미 기록영화상을 받았다.

 할리우드의 기인 오손 웰스가 감독데뷔작 「시민 케인」(41년)을 찍기전 포드의 서부영화 「역마차」(39년)를 무려 40번이나 봤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포드는 화면구성에 뛰어난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머리속에 그림을 완벽히 구성, 카메라렌즈를 통해 보지않고서도 카메라 놓을 자리를 정확히 포착해 화면을 눈부신 이미지로 채울줄 아는 타고난 영상이야기꾼이었다. 

 독선적이고 가학적이었던 포드는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 배우들을 노예다루듯 했는데 그의 독설과 폭군성이 어찌나 가혹했던지 덩치큰 존 웨인을 울렸을 정도다.

 『내 이름은 존 포드입니다. 나는 서부영화를 만듭니다』고 자기를 소개할 정도로 포드는 서부영화를 사랑했고 또 그것의 형태와 성격을 결정지은 감독이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기병대 3부작 「아파치요새」(48년) 「황색리본」(49년) 「리오그란데」(50년)를 비롯해 OK목장의 결투를 그린 「황야의 결투」(46년)와 후기수정주의 서부영화인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62년)등은 포드의 서부영화의 특징인 광야의 쓸쓸한 서정성과 주인공들의 동지애와 금욕주의등이 잘 나타난 작품들이다.

 그러나 포드는 서부영화만 만든 감독은 아니다. 코미디, 역사물, 문예물에서 로맨틱코미디에 이르기까지 못만드는 작품이 없었는데 「미스터 로버츠」(55년) 「젊은 링컨」(39년) 「마지막 환성」(58년)및 「모감보」(53년)등이 그런 영화들이다. 포드는 생애후반기에 자신의 전반기작품에서 추구하던 가치를 조롱하고 회의하는듯한 영화를 만들어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포드는 스웨덴의 명장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말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감독』임에 틀림없다.【미주본사 편집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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