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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가기」 왜 어려운가/문창재 사회부장(데스크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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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가기」 왜 어려운가/문창재 사회부장(데스크진단)

입력
1994.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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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한번 가기가 저토록 어려운가. 하루 한 두번씩 미국대사관 옆을 지나칠 때마다 장사진을 이룬 비자신청 대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되풀이 하게 된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 1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사관 뒷 담까지 늘어서 몇 시간씩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은 보는 사람조차 덥고 짜증나게 한다.

○1개월이나 걸려

 그렇게 줄을 서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신청에서부터 비자발급까지 한달쯤 걸린다고 한다. 재직증명서 갑근세납세증명서 재산세납부증명원같은 까다로운 서류에, 전세·월세 계약서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서류구비에도 적잖은 시일이 소요된다. 서류를 갖추어 대사관에 찾아가 긴 줄서기를 견디는 것으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달부터 인터뷰 예약제가 시행된 뒤로는 예약접수증 얻기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놓쳐 다음 날 또 줄을 서야 한다. 그래서 캄캄한 새벽 3시께부터 줄서기가 시작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새치기 빼돌리기 같은 탈법현상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약삭빠른 사람들이 예약접수증을 여러 장 받아 두었다가 10만원씩에 파는 「암표상」까지 생겼다.

 접수차례가 되어 신청서를 내밀면 비자발급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현장에서 돈을 받지 않고 한미은행에서만 받도록 돼 있어 또 물어물어 은행을 찾아가 줄을 서야 한다.

 그 뒤에는 예약된 날 인터뷰를 하러 가야 한다. 대망의 비자를 받아든 날, 수속을 시작한 날로부터 계산해 보면 1개월쯤 걸렸음을 알게 된다.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이민을 가겠다는 사람들에게 그런 시련을 요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내 나라에 와서 눌러 살겠다는 사람이 경제력이 있는지 혹 전과는 없는지 꼼꼼이 따지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일서는 매우 간편

 그러나 관광 연수 가족방문 업무등을 목적으로 잠깐 다녀 오겠다는 사람들에게까지 그렇게 하는 것은 지나치다. 비자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몇몇 나라들도 길어야 1주일이다.

 93년 도쿄(동경) 근무중 미국을 다녀온 일이 있다. 비자를 얻으려고 도쿄의 미국대사관을 찾아 갔더니 비자신청자 대열이 없었다. 대사관 정문에서 구비서류와 발급절차를 설명하는 안내서를 나눠 주었다. 거기 적힌대로 간단한 서류를 갖추어 여권과 함께 우편으로 보냈다. 정확히 3일만에 5년 장기비자 도장이 찍힌 여권이 우송돼 왔다. 재직증명서같은 구비서류를 다 갖출 시간이 없어 예금통장 사본을 첨부해 귀국여비가 충분히 있음을 증명해 보였더니 OK도장을 찍어준 것이다.

 같은 동양국가인데도 일본에서의 비자업무가 그렇게 간편하고 너그러운 것과 비교하면 미국이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나 하는 의구심을 품지않을 수 없다.

 미국대사관측은 한국에서의 비자업무가 폭주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미국공보원이 배포한 자료를 보면 비이민 비자발급 건수가 87년 7만6천5백건에서 93년에는 23만2천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26만여건이 될 것이라 한다.

 고충을 알 만하다. 그렇지만 당연한 현상이라고 접어두기엔 썩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미국이민자는 87년 3만2천명에서 93년 1만1천명으로 줄었다. 미국가겠다는 한국인 26만명 가운데 25만명은 돈을 쓰러 가겠다는 「고객」이다. 손님에게 고통을 요구하는 것은 동양의 법도가 아니다. 미국의 신사도도 그렇지 않다고 들었다.

○미개국 취급 불쾌

 미국은 최근 수년간 세계 21개국에 관광비자를 면제해 주었다. 한국도 그 대열에 끼여들려면 비자발급 거부율이 지금의 6∼9%에서 2% 수준으로 낮아져야 한다고 대사관은 말한다. 우리가 그 21개국에 끼이지 못한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좀더 대접을 받고 싶을 뿐이다. 미개국 취급은 정말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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