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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변경선에 깃발(한국일보 40돌 대탐험/베링해협을 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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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변경선에 깃발(한국일보 40돌 대탐험/베링해협을 가다:1)

입력
1994.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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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냉전최전선은 온통 눈밭/불확실 결빙·입벌린 개수면·강한 눈보라/숱한 위험뚫고 한국일보창간 40주년기념 94한국베링해협탐험대(대장 허영호·40)는 아시아와 아메리카대륙을 나누고 있는 베링해협을 지난 4월 27일부터 한달동안 탐험하고 5월27일 귀국했다. 대원 6명은 동·서의 갈림인 날짜변경선에서 한국인의 기개를 드높이고 주변의 생태계와 주민들의 생활상을 고루 살펴 보았다. 50여년만의 폭염과 유례없는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대륙의 얼음육교」 베링의 풍광은 시원한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탐험대의 활동과 베링해협 일대의 모습을 소개한다.<편집자주>

 남·북극과 같은 극지에 비해 거리는 짧지만 베링해협은 불확실한 결빙과 난빙대(난빙대), 개수면(개수면)등 곳곳에 위험이 도사린 곳이다. 북극해와 태평양 사이를 빠르게 흐르는 해류의 영향으로 얼음덩어리들이 부딪치며 형성된 난빙대가 바람과 조류에 따라 움직이면서 곳곳에 바닷물이 드러나는 개수면을 만들어 횡단을 불가능하게 한다.

 남극점 도보원정을 신년벽두에 성사시킨 바 있는 허영호탐험대장을 비롯한 대원들이 서울을 떠난 것은 4월27일. 베링해협에는 해빙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탐험대는 보트를 타고서라도 건너기로 하고 5월3일 알래스카의 앵커리지와 노움(NOME)을 거쳐 알래스카의 최서단 마을 웨일즈에 도착했다. 해협에는 여름이 오고 있었다. 깜깜한 암흑속에서 6개월이 넘는 겨울을 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햇살이 잠깐 얼굴을 내밀면 북극권은 봄이다. 그러나 봄은 언제 왔나 싶게 가버리고 백야가 이어지는 짧은 여름철로 바뀐다.

 5월6일 서진을 시작했다. 겨우내 두꺼운 얼음이 깔린 위에 하루에도 몇번씩 흩내리는 눈으로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햇빛없는 하늘과 눈쌓인 땅(사실은 얼어붙은 바다)이 모두 흰데다 봄철 특유의 안개까지 겹쳐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화이트아웃(WHITEOUT)현상이 일어나 시계는 거의 제로상태. 나침반에 의지하는 도리밖에 없다.

 탐험대는 6개의 썰매에 1백여씩 짐을 싣고 4를 걸어 전진캠프를 설치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살펴보니 불과 1백여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있었다. 그동안 계속된 고온으로 유빙도 없는 바다에는 검푸른 물만 넘실거리고 수평선이 안개에 묻혀 개수면의 폭을 가늠할 수 없었다. 준비해온 카약 2개를 바다에 뛰우고 저어갔으나 1도 못 가 포기해야 했다. 물살은 생각보다 훨씬 빨랐고 언제 유빙군이 떠내려올지 몰랐다. 결국 웨일즈마을로 철수, 경비행기를 타고 해협 중간의 리틀 다이오미드섬에 들어가기로 했다.

 리틀 다이오미드섬은 주위가 깎아지른 절벽으로 바다가 단단하게 어는 겨울에만 경비행기가 보급물자를 싣고 바다위 활주로에 착륙한다. 웨일즈를 통한 무전문의에 섬에서는 『활주로는 이미 얼음이 녹아들어 밟으면 스펀지처럼 물이 솟구치는 상태』라며 무리라고 알려왔다. 그러나 운좋게도 이틀째되는 날 섬의 최저기온이 영하 20도로 다시 떨어졌고 탐험대는 세스나기를 빌려 금년 시즌 마지막으로 얼음이 녹아 질퍽거리는 바다 활주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러시아령 라트마노프섬(미국은 빅 다이오미드라고 부름)까지는 4·5. 정상적인 눈길이면 30분만에 건너겠지만 2이상 난빙의 연속인데다 여기저기 생긴 개수면과 겨울이라면 보기 힘든 크레바스까지 입을 벌리고 있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5월 10일 하오 탐험대는 횡단에 나섰다. 많이 해빙된 곳에서는 썰매의 무게 때문에 쩍쩍 얼음이 갈라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대원들은 바닥이 푹 꺼져 차디찬 베링해로 빠져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진땀을 흘려야 했다.

 몰아치는 비바람을 뚫고 탐험대는 4시간만에 드디어 날짜변경선에 도달했다.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나뉘는 곳. 냉전시대 날카로운 동서대립의 최전선이던 미·러시아국경은 그러나 얼어붙은 눈밭에 불과했다. 초속 20의 눈보라가 휘몰아칠 뿐 대륙과 대륙이 마주치는 지점을 표시하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원들은 날짜변경선 위에서 깃발을 펼쳐 들고 기념촬영을 한 후 정확하게 날짜변경선 위에 텐트를 설치했다.

 한달만 지나면 대원들이 발을 딛고 섰던 날짜변경선 위는 다시 얼음이 녹아서 검푸른 물이 출렁이는 바다로 변할 것이다. 인간은 탐험과 모험이라는 이름아래 자연에 도전하여 발자국을 남기고, 자연을 정복한 것처럼 으스대지만 대자연은 한번도 정복당한 적 없이 늘 거기에 그대로 있을 뿐이다.<글·사진 박종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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