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전사남편 국립묘지서 “재회”/“한국국적 취득 이땅에서 살고싶다” 『당신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북한국적을 갖고 40여년간 중국 요령성 심양에서 살아온 홍승복할머니(66)는 28일 하오4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남편의 묘비를 부여안고 오열했다.
홍씨는 이날 상오 중국―인천간 정기여객선 뉴골든브리지호 편으로 입국, 마중나온 시고모 현금연씨(71·경기 옹진군 대부면 북사리)등을 얼싸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서둘러 국립묘지로 향한 홍씨는 비록 유명을 달리했지만 남편을 만난다는 감회에 들떠 있었다.
「육군 일병 현만호 1951년 3월17일 경기 양평지구 전투서 사망」
홍씨는 남편의 묘소에 들국화 한다발을 힘없이 내려놓은 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44년간 쌓인 망부의 한을 달랬다.
『당신을 이렇게 만날 줄이야, 하늘도 무심하셔라…』
6·25가 일어난 50년 12월 평남 중화군 용현면에서 단신 월남한 남편이 국군에 입대해 51년 3월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90년 4월. 90년 4월 한국을 다녀간 아들 광섭씨(45·철도기관사)가 아버지의 죽마고우 최양근씨(65·경기 과천시 별양동)로부터 비보를 들었다.
홍씨는 남편의 묘지라도 찾아 달라는 수백통의 편지를 최씨에게 뛰운 끝에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당시 남편은 만삭의 몸으로 남행길을 만류하는 나에게 아들을 낳거든 광섭이라고 이름을 지으라는 말을 남긴 채 월남했다』고 말했다.
월남가족에 대한 혹독한 사상감시와 눈총을 피해 55년 중국으로 밀입국한 홍씨는 삯바느질과 공장잡역부등을 하면서 아들을 키웠다.
『중국이 북한탈출자란 이유로 국적을 바꿔주지 않았어요. 한국국적을 얻어 이 땅에서 살고 싶습니다』 홍씨는 그것이 44년 이산의 한을 푸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김성호기자>김성호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