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진-선봉지구 설치 등 개방주도 귀순한 강명도씨의 장인 강성산북한 정무원총리는 현재 권력서열 3위로 김일성·김정일 모두에게 신임을 받던 최고위층중의 한 사람. 31년 함경북도 청진시 경성군에서 김일성의 모친 강반석 큰언니의 아들로 태어난 김일성의 이종사촌동생으로 만경대혁명학원, 김일성대학 정경학부, 체코 프라하공대를 졸업하는등 보장된 출세길을 걸어왔다.
북한 행정테크노크라트의 비조격인 그는 84년부터 2년간 정무원총리를 지냈고 92년12월 총리로 재기용됐다. 84년에는 총리로 기용되자마자 북한 개방정책의 효시격인 합영법을 제정했으나 성과가 작고 보수세력의 비판을 받아 86년12월 해임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총리직에서 해임된 뒤에도 함북도당 책임비서를 맡으며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설치키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등 개방파인맥의 대표주자역할을 해왔다.
67년 자강도책임비서, 70년 평양시 책임비서로 당핵심부에 진입한뒤 77년 정무원부총리,80년 정치국위원에 선출된뒤에는 권력핵심부에서 떠난 적이 없다.
사위의 남한귀순이 임박한 권력개편에서 강성산의 지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거리.
◎조철준 전 건설부부장/건설부서 40년근무한 실무형관료/나이 등 이유로 선으로 물러나
조철준은 해방이후 줄곧 북한정부의 건설사업을 지도해온 실무형 전문관료.
소련 레닌그라드대를 졸업한 조는 한국전쟁 직후인 54년 북한 건설성 관리국부장으로 임명되면서 우리측에 알려지기 시작한뒤 올해까지 40년간 정무원 건설부에서만 몸을 담으면서 꾸준히 승진을 거듭해왔다.
그는 56년 국가건설위 부국장으로 승진한 뒤, 58년 건설국장, 64년 국가건설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며 전쟁복구사업을 일선에서 지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건설사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73년 정무원 건설부 부부장(차관)으로 임명된뒤 80년10월 6차전당대회에서 당중앙위 후보위원으로 선출돼 북한권력의 핵심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이어 78년에는 건설부 부장(장관)으로 승진, 94년 5월 해임될 때까지 무려 16년간 이 직책을 지니며 건설부문의 총책임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는 건설사업에만 종사해온 인물로 정치색은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90년에는 최고인민회의 제9기 대의원으로 선출됐고 92년4월에는 김일성훈장을 수훈했다.
현재도 당중앙위후보위원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직을 지니고 있으나 연령등의 이유로 2선에 물러나 있는 상태인 것으로 통일원등은 보고 있다.<유승우기자>유승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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