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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스탈린·모 3각접촉(러 외교문서로 본 6·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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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스탈린·모 3각접촉(러 외교문서로 본 6·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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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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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사흘전 남침협의 마무리/「북침에 대한 반격」 왜곡작업도/북­소 50년말까지 암호교신 중단 50년 5월 김일성과 스탈린 모택동은 긴밀한 3각접촉을 가짐으로써「합작에 의한 대규모 남침」이 임박했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김일성은 49년3월5일 소련을 방문, 스탈린과 회담을 가진데 이어 50년4월 다시 스탈린을 만났다. 김일성은 50년5월13일 북경을 방문, 모택동과 밀담을 나눴다. 스탈린과 모택동은 49년12월 모스크바에서 회담을 가진 뒤 암호문을 통해 계속「김일성의 행동」을 체크하고「막후 역할」을 논의했다. 북―소―중간의 3각협의가 긴밀하게 이뤄진 뒤 김일성은 38선을 넘게 되는 것이다.

 외무부가 공개한 러시아외교문서는 이같은 3각접촉 과정에서 오고 간 전쟁준비의 협의과정이 소상하게 그려져 있다. 주평양소련대사였던 슈티코프가 본국에 타전한 전문은 전쟁발발 사흘전인 6월22일 3각협의가 마무리됐음을 밝히고있다. 슈티코프는『북한주재 소련대사관에「암호전문의 해독은 바람직하지 못하니 향후 일체의 암호전문을 해독하지 말라」는 모스크바의 지시가 시달됨. 이후 50년말까지 평양과 소련외무부간에는 전보교신이 중단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스탈린은 모택동과의 협의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특히 미국의 개입을 우려하고 있던 스탈린은 소련이 한반도 전쟁에 개입함으로써 미국을 자극, 제3차세계대전으로 발전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모택동과의 전문교신에서「필리포프」라는 암호성명을 사용하거나 중국식 이름인「핀시」를 가명으로 쓰기도 했다.

 3각협의가 절정에 달했음을 설명하는 대목은 50년5월14일「필리포프」가「모택동동지」에게 보낸 비밀전문.『조선인 동지들과의 회담에서 필리포프와 그의 동지들은 변화된 국제정세로 인해 통일사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그들의 제안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이 회담에서 그 문제가 궁극적으로 북한동지들과 중국동지들이 공동으로 결정해야 할 성질의 것임을 명백히 했다. 상세한 회담내용은 북한동지들이 당신에게 전해줄 것이다』

 전날인 5월13일 김일성은 외무장관인 박헌영을 대동하고 북경에 도착, 모택동과 심야회담을 가졌다. 이날 심야회담에서 모택동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그러나 이튿날 저녁 주북경소련대사인 로신을 통해 스탈린의 전문을 받아본 모택동은 적극적인 자세로 변했다. 다음날 모택동은 대기중이던 김일성과 박헌영을 불러「남침계획」을 들었다. 이 자리서 모택동은『미국이 참전하면 도와주겠다』는 약속과 함께「전략적인 조언」까지 내려주었다. 16일 김일성은 모든 협의를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왔다.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최종결정을 전달한 것은 5월30일의 전문이었다. 슈티코프대사가 본국에 문의한 전문에 대한 답신 형태였다. 문의는『조선인들은 휘발유와 의약품을 요청하고 있음. 조속한 지시를 요망함』이었다. 스탈린의 답신은 간단했다. 『당신의 건의를 승인함. 의약품과 원유는 곧 받게 될 것임』이라는 전문 밑에 스탈린은「그로미코」라고 서명했다. 스탈린은 당시 비신스키외무장관의 제1차관이었던 그로미코의 이름을 사용함으로써「특급비밀사항」임을 강조했던 것이다.

 김일성과 스탈린은 전쟁개시를 앞두고「남쪽의 침략에 대한 반격」으로 몰아가기 위한 작업도 공동으로 시행했다. 6월20일과 21일 슈티코프대사는 스탈린에게 김일성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는 후일의 명분을 위해 거의 공개적으로 보내졌다.『남한정부가 북한에대해 공격을 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첩보가 하오 8시께 북한측에 입수되었다(20일)』『북한군은 남한 육군이 두차례에 걸쳐 북한에 대한 전투행위를 개시하라는 명령을 내렸음을 라디오에서 들었다(21일)』그러나 슈티코프대사도『북한의 이같은 첩보가 공개적 문서로 돼있어 의심스럽다』는 개인적인 주석을 달아놓고 있었다.

 소련의 군사백과사전은 이같은 전문을 근거로 북침을 기록했다.『남한과 미국은 조선인민민주공화국을 제거하고 한반도를 중국과 소련을 공격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기위해 공격했다. 6월25일 남한군대는 조선인민공화국 영토내 1∼2까지 진격했고 북한정부는 원수들을 격퇴할 것을 명령했다』<정병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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