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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정부 시험」/이종재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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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정부 시험」/이종재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4.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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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계의 정상인 삼성과 현대그룹이 전례없는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현대그룹이 다른 자동차기업들과는 달리 삼성그룹의 승용차사업 참여를 적극 반대하지 않더니 이번에는 삼성그룹이 현대그룹의 제철사업 참여를 측면 지원하고 나섰다. 삼성그룹의 최고경영자중 한 명인 비서실장이 공개석상에서 『정부는 현대그룹의 제철소건립계획을 막을 명분이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지난 30여년간 재계 정상을 놓고 경쟁해온 양대그룹의 현대판 「오월동주」다. 재계의 협력은 나쁠게 없다. 그러나 이번 삼성과 현대의 공동보조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양 그룹의 「협력」이 기업의 신규사업 진입과 퇴출의 자유에 대한 논쟁과는 별개라는 관계자들의 말이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상당수 경제계 관계자들은 『양 그룹의 외견상 협력은 각각 자기 그룹의 숙원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며 새 정부의 산업정책, 나아가 정부의 대재벌정책을 시험하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관계자들은 이같은 분석의 배경으로 크게 두가지를 들고 있다. 두 그룹 모두 새 사업의 근거지를 부산으로 잡고 있으며 주무부처인 상공자원부의 분명한 반대속에서 사업강행의지를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그룹은 특히 국가기간산업인 제철사업참여를 구체화시키면서 주무부처인 상공부와는 상의도 없이 민자당등 정치권에 우선 사업개요를 설명했다고 한다. 삼성과 현대가 앞다퉈 현재의 정치권과 무관할 수 없는 부산을 발전시키겠다고 나서면서 정부의 산업정책보다는 정치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양대재벌이 정부를 시험하겠다고 나선데는 정부의 책임도 있다. 정부의 산업정책, 대재벌정책이 확실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정치권의 영향력을 벗어나 경제논리만으로 결정되고 있는지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대목이다. 정부에 대한 삼성과 현대의 이번 시험이 앞으로 우리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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