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어제·오늘·내일」이라는 주제 강연에 이어 마련된 주제별 세미나에서는 발제자 최원식 김용직 김병익씨를 비롯해 구중서 박태진 이기철 이은봉 황지우 권오룡씨 등이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광복 50년 한국문학의 성과」 「오늘의 한국문학 무엇이 문제인가」 「21세기 한국문학의 방향」등의 소주제아래 우리 문학의 「어제」와 「오늘」, 「내일」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전망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서로 교환했다. 주제별 세미나의 내용을 요약한다.<편집자주>편집자주>
◎정치·사회·사상성 대립속 “생산적 긴장”
제1주제:광복 50년 한국문학의 성과
사회:감태준 발제:최원식
토론:구중서 박태진
▷발제요약◁
우리 사회는 그동안 「반동」과 「빨갱이」라는 극단적 언사가 난무했던 혹독한 마녀사냥의 시대를 거쳐왔다. 이제야말로 남한의 두 문학진영이 자기비판 속에서 새로운 쇄신을 도모하고, 그 바탕 위에서 창조적인 남북문학을 향한 새로운 지표를 탐색할 때다.
우리 문단의 냉전구도는 대개 해방 직후의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기원한다. 당시 남한에는 4개의 문학단체 ― 조선프로문학동맹, 조선문학건설본부, 전조선문필가협회, 청년문학가협회가 포진하고 있었다. 앞의 2개 단체가 좌파적이라면 뒤의 2개 단체는 우파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문학의 대결적 구도는 분단과 6·25를 거쳐 더욱 경화된다. 이 점에서 4·19 혁명의 의의는 지대하다. 문학이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문학이 사회속에서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 등등 문학에 대한 일종의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게 했다.
60년대 후반의 순수·참여 논쟁은 수준높은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문학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개척할 운명에 눈뜨는 계기가 됐다.
70년대 이후 우리 문학의 논쟁 구도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민족문학작가회의), 「창작과 비평」, 「실천문학」등을 주축으로 한 민족문학론과 순수문학론 및 민족문학론에 모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문학과 지성」(문학과 사회), 「세계의 문학」등을 주축으로 한 중도파의 대립이다. 두 그룹의 대립은 소모적 측면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닐지라도 대체로 보아서 일종의 생산적 긴장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 문학을 향해 끊임없이 엄습해오는 정치성 또는 사회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정치성·사회성·사상성의 통일로서의 문학의 문제를 온몸으로 밀고 나갈 때다. 그리하여 문학 본래의 위엄을 회복해야 한다.
▷토론요약◁
토론자인 구중서씨(문학평론가)는 발제내용 중 정치성·사회성·사상성의 통일로서의 문학의 문제에 대해 『그런 요소들을 인간본성과 언어능력 안에 창조적으로 형상화할 과제가 있다는 식의 표현이 더 문학의 본질에 가깝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토론자 박태진씨는 『민족문학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휴머니즘을 빠뜨렸다』며 아쉬워했다. 공감한다고 전제한 최교수는 『그러나 서구적 관점의 휴머니즘으로는 근대사의 절정이라고 할 현재에 있어서도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우리문학은 지식인을 그리는데 서툴다』고 한국문학의 지성부재를 거론한 발제에 관해 청중가운데 시인 민영씨가 『해방 이후 사회의 중심세력이 지식인이라기보다는 민중이었기 때문이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하자 최교수는 『그러나 민중뿐 아니라 지배계급, 중산층 등 모든 사람들을 균형있게 묘사해야 대작이 나온다』고 답했다.<정리=김병찬기자>정리=김병찬기자>
◎“남북 정신·문화통일 문학이 앞장서야”
제2주제:오늘의 한국문학 무엇이 문제인가
사회:민용태 발제:김용직
토론:이기철 이은봉
▷발제요약◁
지금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썰물시대를 살고 있는 중이다. 여러가지 상황을 보아 지금 우리 문학과 문단은 일대 변혁 위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우리 문학과 문단은 외표로 볼 때 미증유라고 할 정도로 활기에 차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몇가지 우리 문학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는 듯 보인다. 우선 극히 일부이기는 하나 오늘 우리 문학인 가운데는 일종의 노점상 취향에 빠진 사람이 있다. 그들은 약간의 말솝씨나 얼마간의 손재주로 작품을 만들어 낸다. 또한 아직도 좁은 울타리를 고집하고, 자기가 아는 것만을 절대적 진실로 믿는 편견의 층이 두껍다. 지금 우리는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중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차원의 문학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
우리 문학의 당면 과제 가운데 하나는 민족문학의 건설이다. 본래 우리 문학은 2백여년의 역사, 전통을 가진 당당한 실체이다. 이런 문학으로 하여금 큰 활화산이 치솟게 해야 한다. 민족문학이란 그저 형식논리상의 한글로 쓰여진 작품을 가리키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를 휘감고 돌 수 있는 가락이 빚어져야 한다. 우리 모두의 꿈과 보람이 집약된 시와 소설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은 워낙 벅찬 과제이다. 올바른 방향의 설정과 문단인 전체의 합의 내지 공감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큰 과제는 통일문학의 대 교향악을 연주하는 일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얼마간의 문제가 개재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학을 예술양식의 하나로 보느냐,사상과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보느냐 하는 남북의 시각차이다. 우리가 시도할 통일문학은 북쪽의 문학과 문단을 장외로 돌리고 이루어질 수가 없다. 통일문학은 이에 대한 대비책을 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것이다.
▷토론요약◁
이기철영남대교수(시인)는 먼저 『자생된 우리 이론을 갖고 우리문학을 바라보게 된것이 가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이념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 『이념은 필요하나 이념에 매달리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면서 『탈이념시대에 우리 문학이 추구해야 할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감사인 이은봉씨(시인)는 『문학에서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탈이념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이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남북통일에 있어 국토통일, 정치통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과 문화의 통일』이라며 『문학이 남북의 통일을 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자인 민용태고려대교수(시인)는 『우리문학의 시야를 세계로 넓혀야 한다』고 강조하고 『현실과 다른 또다른 현실을 내다보는 상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정리=김광덕기자>정리=김광덕기자>
◎“첨단사회 헤쳐갈 정신적 역량 길러야”
제3주제:21세기 한국문학의 방향
사회:정현기 발제:김병익
토론:황지우 권오룡
▷발제요약◁
이 글은 다가올 21세기가 유도하는 문학적 변화와 문학인의 문학발전방향을 현재적 관심사로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 후기산업사회로의 변화, 과학기술발전, 남북관계의 진전등의 현실적 변화는 문학의 생산과 유통과정을 조건짓고 문학과 문학인의 내재적인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우선 후기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시장경제논리가 더욱 확고하게 사회운영원리로 성숙돼 생산보다 소비를, 노동보다 여가를 중시해 문화산업이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는 긍정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을 독자로 참여시켜 문학적 민주주의를 낳겠지만 그 대가로 문학이 고답적 위엄과 내면적 영향력이 희석되고 위락과 감상적 소비의 대상으로 밀려나 자본주의의 모순과 그것의 반인간적 타락에 대한 비판적 기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
둘째 CD롬과 PC통신등 「비종이 책」(NON-PAPER BOOK)이 나타나고 있듯이 과학기술의 발달은 대중적인 쓰기―읽기를 촉진, 문학이 독자성을 상실하고 작가는 창조보다 기능이 강조되는 직능인의 존재로 끌어내려질 것이다. 이로인해 문학이란 장르에 대한 우리의 관념자체가 변화될 가능성도 있다.
셋째 우리에게 다가올 통일은 통일 한국문학사의 성립을 재촉하겠지만 작가에겐 통일로 인한 문화적 충격에의 대응으로부터 한국어의 통일성부여, 북한문인들의 상이한 관념과 기법을 조율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짐들이 지워질 것이다.
문학이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문학교육개혁, 출판과 독서풍토개선, 시민들의 참된 삶에 대한 욕구증진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학인 자신들이 아름다운 문학창조를 위한 정신적 단련과 수준높은 창작을 위한 예술가적 의욕을 다짐해야 한다.
▷토론요약◁
토론자로 나선 황지우시인과 권오룡교수(한국교원대 불어교육과)는 우리사회 변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와 사회변화에 따른 글쓰기의 행태에 대해 각각 얘기했다. 먼저 황시인은 『컴퓨터 소설이나 시간보내기용 펄프소설 등 포스트모던의 증후들이 나타나 활자문화에 대한 가사상태를 경험하는게 사실이나 우리사회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접근해가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신 우리사회는 『전근대, 근대, 탈근대라는 이른바 「삼겹살구조」가 중층을 이루고 근대적 조건이 최종적으로 우리 삶을 규정한다』고 진단했다.
권교수는 문제제기보다는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글쓰기 변화를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과학이 몰고온 물질의 풍요가 작가와 독자의 대화양식을 변질시키고 있다』고 말한 권교수는 『이것이 통제불가상태에 빠지면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엘리트주의로 문학이 편협화되며 독자들을 소외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 나아가서는 언어의 기능이 가치창조에서 감각이나 유희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글의 언어보다 말의 언어를 강조하게 돼 구텐베르크가 가져온 문화혁명과 방향은 반대이지만 파급력에선 버금가는 새로운 문화혁명을 체험할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정리=김동국기자>정리=김동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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