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은 패러독스의 시대다. 인간성의 상실로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일본과 이탈리아는 반부패 정국을 맞아 정계개편의 폭풍에 휘말렸다. 이는 필연적이었다. 냉전의 시대에 다수 국민은 부패라는 일당지배체제의 폐해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를 척결할 의지가 없었다. 「먹이사슬」의 핵심 고리를 연결시켜온 자민당과 기민당이 개혁의 심판대에 올려지면 혼란이 불어닥칠 것이 걱정이었고 그러한 사태를 반길 공산당이 두려웠다.
탈냉전의 시대는 달랐다. 공산주의에대한 공포가 사라지면서 부패 구조에 대한 국민의 인내심이 무너졌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려는 모험심이 사회 전반에 자라났다. 그리고 그것은 기민당을 붕괴시켰고 자민당을 잇따른 분당 및 탈당 사태로 몰고갔다.
일본과 이탈리아의 정계개편은 반공이 승리한 결과다. 거대한 반공의 이념적 공감대가 짜여진 덕택에 사회는 반공을 넘어서는 개혁에 나서고 냉전의 부패한 주역을 심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더욱 역설적인 것은 동구라파의 소식이다. 이전의 민주화 세력은 어디서나 수세에 몰려 있고 독재자로 낙인 찍혔던 공산당은 당의 명칭을 고치고 선거에 참여하여 권력을 되찾고 있다.
하지만 이를 놓고 공산주의의 부활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공산당의 후예에게 있는 것은 국가경영의 경험이다. 민주화 세력과는 달리 경제위기를 관리할 통치기술이 공산당의 후예가 가진 최대의 무기인 것이다.
반면에 없는 것은 대안이다. 위기의 근원은 인간성을 상실한 공산체제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공산당의 후예가 개혁과 개방의 당위성을 부정하고 과거로의 회귀를 단행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간 축적해 놓은 통치기술을 가동시켜 시장체제로의 이행을 가속시킬 공산이 더 크다. 탈냉전의 승자가 반공이라고 재차 강조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이렇게 격변할 때 한국은 때아닌 사상논쟁을 벌이고 있다. 논의에 부쳐볼 가치조차 없는 주체사상과 김일성의 문제를 놓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은 사회적 분위기를 경직시켜 문민시대의 다른 수많은 현안에 대한 신축적이고 신중한 정책 대응을 방해하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사상논쟁을 촉발한 것은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남북 정상회담에 미련이 있는 정부였다. 문민정부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면서 김일성에 대한 평가를 주저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불분명한 정부정책은 잠시나마 시대에 대한 혼동을 불러 일으켰고 소수 정치인과 학생운동권은 거기서 논의거리 조차 아닌 것을 논쟁에 부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였다.
정부는 자신감을 갖고 정상회담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반공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이를 넘어서는 보다 긍정적인 이상향을 설계하여야 한다.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친북한 세력을 지나치게 의식하다보면 우리는 경직되어 내부의 현안과 갈등을 해결하고 절대 다수를 위한 민주주의를 공고화할 기회를 잃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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