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정일 배지(장명수 칼럼:1700)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정일 배지(장명수 칼럼:1700)

입력
1994.07.22 00:00
0 0

 내가 처음 만난 북한 사람은 60년대말 판문점에 나온 그쪽 기자들이었다. 어린 시절 6·25를 겪으면서 인민군과 북한 피란민들을 본 적이 있지만, 성년이 되어 북한사람을 만난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우리 세대는 철저한 반공교육 속에 성장했으나, 판문점에서 내 나이 또래의 여기자들이 다가왔을 때 반가움과 호기심이 솟구쳤다. 그러나 『반갑습니다』라고 서로 손을 잡는 순간 그들의 흰 저고리 앞섶에 붙어있던 김일성배지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 순간 섬뜩하던 이질감이 아직 생생하다. 「가슴에 배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과 달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단절감은 마치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느껴졌다.

 『이 사람이 누군데 왜 하나같이 가슴에 달고 다니는거야?』라고 남한기자들이 놀리면, 그들은 『버르장머리 없이 어디다가 감히 손가락질을 해』라고 벌떼같이 대들곤 했다. 비교적 자유롭게 농담을 주고받던 남북의 기자들은 그 배지때문에 자주 싸웠다.

 92년 2월 남북 고위급 회담을 취재하러 평양에 갔을 때, 그 곳에서 만난 북한 기자와 인민들은 여전히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다. 그 배지에 대해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나의 분노는 독재자의 억압과 개인숭배가 어떤 것인지를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치가 떨리는 감정이었다.

 남한의 우리들도 오랫동안 독재아래 숨죽이며 살았고, 「국부」를 추앙하는 개인숭배도 겪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고통을 잘 알고 있고, 누구보다 독재를 증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독재자의 얼굴이 새겨진 배지를 가슴에 달고 살아가지는 않았다. 그런 배지를 달고 살아가지 않았는데도 독재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1992년 김일성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는 북한 기자들 중에는 60년대말 판문점에서 만난 기자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계에서 온 국민이 그런 배지를 달고 살아야 하는 나라는 북한뿐이라는 걸 알고 있어?』라고 남한기자들이 여전히 심술궂게 물었을 때 몇몇 북한기자들은 화를 내는 대신 『그런 얘기는 이제 그만 해』라고 말했다. 그들은 지쳤음을 숨기지 않았다.

 김일성이 사망한 후 북한 인민들은 김정일배지를 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소식은 새삼 우리를 화나게 한다. 김정일 역시 인민들로 하여금 자기 얼굴이 그려진 배지를 달고 밤낮으로 사모하며 살도록 강요할 생각인가. 자기 인민을 모독하는 그 파렴치한 수법을 대를 이어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북한인민들은 도대체 얼마나 더 그런 배지를 달아야 하는가.

 김정일배지는 세계가 김정일에 관해 품고있는 선입관을 변화시킬 것인가, 오히려 강화시킬 것인가를 가름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