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정권,외부세계와 차단 경제핍박/85년부터 개방정책을 추진 라오스는 19세기말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면서 세계무대에 등장했다.
여러 나라와의 국경을 접한 관계로 외부와 마찰이 계속된데다 한동안 친미반공정권과 공산정권이 남북으로 나눠 서로 대립하는등의 이유로 경제는 극심한 침체상태에 빠졌었다. 그러나 85년부터 서방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경제가 미약하나마 활기를 띠게 됐다. 미국과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쟁행방불명자(MIA) 현지발굴을 허용, 관계개선에 나섰으며 태국 및 중국과도 관계개선을 추진해왔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과 태국을 연결하는 미트랍햅 대교가 올 4월초 개통, 태국과의 무역이 증진됐으며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을 비롯,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스웨덴 프랑스등이 라오스에 원조를 하기에 이르렀다.
91년 69건이던 외국투자도 92년에는 1백2건으로 늘어났고 같은해 5천7백만달러에 지나지 않았던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도 93년말에는 1억달러를 넘어서는등 경제 개혁·개방이 착실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외국원조 의존과 경제관료등 고급인력부족과 제도미비,사회간접자본부족은 라오스의 지속적인 경제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비엔티안=황양준기자>비엔티안=황양준기자>
□약사
1953년 라오스왕국 독립
1954년 제네바협정에 의해 베트남군 라오스에서 철수
1958년 라오스왕국, 좌익 저지 위해 유엔군 긴급파병 요청
1960년 군부 쿠데타로 우익정권 타도 및 푸마정권 수립
1975년 왕정폐지,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 수립으로 공산화
1981년 제1차 5개년계획 착수
1985년 시장경제체제 도입
1988년 외국인 투자법 공포
1991년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 신헌법 제정
1991년 미국의 전쟁행방불명자(MIA) 현지 발굴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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