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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원칙과 유연성/박상섭(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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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원칙과 유연성/박상섭(한국논단)

입력
1994.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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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냉전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신뢰구축」에 저해되는 일이라고 꾸짖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 김일성의 사망소식을 듣고 막연하지만 나름대로 희망적 기대를 가졌던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김일성의 사망으로 북한에서 드디어 신화시대가 끝나고 정치권력의 동태가 자체의 논리대로 전개되는 역사의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약간은 너무 이른 기대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물론 모처럼 전망이 밝았던 남북정상회담이 자동적으로 연기 아니면 아예 무산될 것임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김일성사망에 따른 혼란은 북한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더 심한듯 하여 한쪽으로는 흥미롭기도 하지만 한심한 기분도 좀체로 지울 수 없다. 흥미로운 까닭은 획일적 군사문화를 개탄하던 게 엊그제의 일같은데 우리사회가 실제로는 엄청난 다양성을 포괄하는 성숙한 다원사회로 발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였다. 한심한 까닭은, 이미 많은 분들이 지적하였듯이, 의외로 안 그럴만한 분들이 기대와 현실을, 무원칙과 유연성을, 선의표시와 비위맞춤을 혼동하는 것같은 인상을 보여서였다.

 연기가 될지 아니면 무산될지 불확실하지만 일단 합의가 되었던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 하면서도 상당한 기대를 걸었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는 우리측이 진작에 해두었던 회담제안은 무시된채 새삼스럽게도 그것도 공식경로가 아니라 「개인자격」으로 방북했던 외국인사를 통해 정상회담 제의가 사적으로 전달되었지만 예절에 구애없이 우리측이 즉시 받아 들인 것은 통일 내지는 평화정착을 위한 국민적 여망에 비한다면 그러한 비예는 오히려 작은 문제로 여겨졌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정상회담을 제의한 북한의 의도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전술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한 협조의 필요성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진정한 인식이다. 북한이 핵개발에 따른 제재를 피할 전술적 수단으로 정상회담을 제의했다면 정상회담의 성과는 명약관화했을 것이다. 전술적 고려를 넘는 나름대로의 객관적 필요에 응한 것이라면 우리가 북한에 대해 특별히 신의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한 정상회담의 전망에 대해 비관적일 이유가 없다.

 이러한 점을 굳이 다시 지적하는 것은 남북한 정상회담이나 그 이후의 관계개선 어느 것도 북한태도의 근본적 변화에 기초하지 않은 선의나 호의에 기대할 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에 야기된 「조문」주장은 신뢰구축을 위한 외교적 전술로서의 「선의표시」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강변되기도 하는데, 그것이 과연 선의표시인지 아니면 비위맞춤인지 잘 구별이 안 된다. 북한은 조문을 환영한다는 등의 선의와 무관한 주장으로 일관하는데 과연 신뢰구축이 일방적 비위맞춤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잘 모를 일이다.

 이러한 혼란이 야기된 데에는 정부의 책임도 전혀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번 주초 총리의 발표로 북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명백히 천명돼 더 이상의 혼란이 없을 것으로 기대·희망되지만 그러한 천명이 새삼스럽게 필요했다는 점 자체는 그동안 북한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무엇인가 불분명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점은 지난주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외무장관이 남북관계가 기본적으로 적대관계임을 규정하는데 상당한 노력이 들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물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원칙적으로 남북한이 적대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관계개선이 필요한 것이 아니가. 이 점을 명백히 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필요한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 어떤 이는 이러한 태도를 외교의 유연성이라는 각도에서,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들어 옹호할 것이다. 일리가 없는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유연성은 확고한 원칙이 전제될 때 의미있는 것이 된다. 유연하기 위해 원칙마저 숨긴다면 그러한 유연성은 무원칙을 감추기 위한 둔사가 될 위험이 적지 않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신중한 태도는 북한으로부터 화답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사정은 정반대가 아닌가.

 김정일체제의 성격과 장래에 대해 맞지도 틀리지도 않은 분분한 논의가 많다. 그 대처방안도 각양각색이다. 궁금하기는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남북한간의 평화정착에 관한 우리의 원칙적 입장이 확실하다면 김정일체제의 장래에 관해 가슴졸여야 할 이유는 없다. 북한이 진정으로 대화를 원하면 응하면 될 것이고 아니면 그뿐이다. 이제는 북한태도에 우리가 맞추려 하기보다는 우리의 확고한 자세에 대해 북한이 나름대로 새로운 대응을 보이도록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북한에 대해서는 보다 의연한 자세를 취하면서 대신 정부는 이제 내부적 혼란을 정리하는데 보다 단호하고 기민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남북관계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서는 북한의 대남인식과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이것은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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